6월 24일은 벨기에인 뱅상 레브(Vincent Le-bbe) 신부가 세상을 떠난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진」「상」의 정신에 따라 신앙과 인간해방을 위한 창조적인 삶을 사는 구제 가톨릭 형제회(AFI:Association Fratrne?lle Internationale)의 창설자 뱅상 레브 신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온전한 자아의 포기」와「진정한 이웃사랑」그리고「항구한 기쁨」의 깊은 뜻이담긴 전희생(全犧牲), 진애인(眞愛人), 상희락(常喜樂)이라는 선교정신을 심어 마침내 오늘의 AㆍFㆍI가 있게한 뱅상 레브 신부.
그러나 벨기에인으로 중국선교의 열망을 안고 중국대륙으로 건너가 중국인으로 귀화 (중국명ㆍ雷鳴蓮) 당시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영적인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했던 중국인들에게 자기각성과 복음에 대한 의식을 일깨움으로써「중국은 중국사람의 손으로」라는 깃발아래 복음의 메시지가 중국 땅에 전해지도록 처절한 투쟁을 벌인 그의 삶은 더욱 짙은 감동과 교훈을 니끼게 한다.
1877년 8월 19일 벨기에의「강」(Gang)에서 태어난 레브 신부는 11세때 중국에서 순교한 선교사 장 가브리엘 뻬르보아르(Jean Gabriel Per-boyre) 복자의 생애를 알게 되면서 중국 선교에 대한 결심을 굳히게 된다.
1895년 파리 라자리스트(Lazaristesㆍ빈첸시오수도회)에 입회한 뱅상은 이후 로마 에서 중국 의화단 사건으로 학살된 것으로 알려졌던 파비에(A、 Fa-vier) 주교를 만나게 되고 그는 부제품도 채 받지않은 신분으로 중국행 선박에 뛰어오른다. 이때가 1901년 2월 10일.
당시 중국 가톨릭은 교회의 권력을 남용, 특혜를 보장받고있던 프랑스 외교 보호권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의화단사건으로 학살된 수많은 선교사ㆍ신자들에 대한 거액의 보상금을 받아냄으로써 중국인들로부터 중국인 신자들과 더불어 「이방인」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그해 10월 사제 서품을 받은 레브 신부는 1906년 가장 인기없고 선교지로 열악한 조건을 갖춘 북부의 대항구 도시「천진」의 지구장으로 임명되는데, 이것은 그의 획기적이고 놀라울만한 활동 즉 「천진운동」을 가능케한 첫 출발점이라는데 주목할 만한 의미를 갖는다.
1918년 레브 신부가 주창한「천진운동」의 골자는 첫째, 모든 사회계층과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을뿐 아니라 특히 사회지도층과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조성함으로써 교회가 하나의「장식물」로 겉도는 것을 방지했다. 둘째는 기존의「금전수여식 선교법」대신 특강과 출판물을 통한 특수선교 방법이다.
누구나 이용할수 있는 강당을 8개 확보, 종파와 국가문제를 주세로 강의를 지속적으로 떨쳐나가며서 한편으로는「가톨릭신문」과「여성신문」주간으로, 그리고 일간지「익세보」를 창간, 민족적 희망을 불어 넣으면서 아울러 복음적 메시지를 전파해 나갔다.
레브 신부의 중국인들을 위한 다양하고 열성적인 활동은 당시 중국과 프랑스 사이에 얽힌 심각한 이해관계로 인해 중단되는 사태를 맞게되고 마침내 유럽으로 강제 소한되기에 이른다.
1920년부터 1927년까지 레브 신부는 유럽에있는 수백명의 중국 유학생들을 위해 투신하게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그동안 쟁점으로 되풀이 돼 왔던 중국인 주교 탄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중국 교회는 완전히 중국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확신에 찬 믿음은 1926년 마침내 최초로 6명의 중국인 주교 탄생을 맞게 된다.
일부 선교자들의 강한 거부운동에도 불구, 다시 중국으로 귀환한 레브 신부는 벨기에 에서 그가 창설한「사미스트회」의 영성과 다름없는 준엄한 수도생활을 요구하는 사도직 수도회인「성요한 작은 형제회」와「데레사 수녀회」(1928)를 창설, 중국을 위한 그리스도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1937년 7월「중일전쟁」발발과 함께 중국군에 자원한 레브 신부는 그를 따른 몇몇 수사들과 수하조직원들과 공산군에 의해 감금당하게 되고 석방후 이로인해 정신적인 시련을 겪다 1940년 6월 24일「작은형제회」의 주보인 성 요한 세자 축일이자 그가 열렬히 사모했던 복자 뻬르보아르 축일에 영원히 눈을 감았다.
중국 민족의 해방과 혁신을 위해 수많은 교육과「가톨릭운동」(천진운동)을 펼친 뱅상 레브 신부의 50주년을 기념키위해 대만과 벨기에에서는 기념우표제작ㆍ심포지엄 등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고 있으며 한국교회에서는 이날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한편 벨기에에서 1937년 창설, 1956년 한국에 진출한 국제 가톨릭 형제회(AFI)는 32명의 한국인회원(외국인 4명포함)이 서울ㆍ수원ㆍ안양ㆍ전주ㆍ대전ㆍ대구 등지에서 「전」「진」「상」의 이상에 따라 교직ㆍ노동직등의 선교를 위한 사목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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