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의 중심주제
1,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의 핵심은 계시의 중심주제 즉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데 있습니다. 복음서들과 신약의 다른 책들이 이 기본적인 그리스도교 진리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데 우리는 앞에서 그 여러 양상들을 살펴봄으로써 밝혀보려 했습니다. 공의회를 통한 교회의 장엄한 가르침에 대한 복음서들의 증언은 신경들(무엇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반영되어 있고 마찬가지로 자연히 교회의 지속적인 평상 교도에, 교회가 증진시키고 지도하는 전례에, 기도와 영적 생활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복된 성삼의 신비
2, 하느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는 하느님의 자아계시에서 복된 성삼내 한 하느님의 표현할 길 없는 신비를 벗겨주는 교리의 기조를 이룹니다. 사실 히브리서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을』(1, 2)때 그분은 당신의 위격적 생명의 실재를 계시하였습니다. 그분이 신성으로 절대적 일치에 머물면서 동시에 성삼, 세위격의 신적통교인 그 생명의 실재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들어오신』아들(요한16, 28 참조) 은 직접 이 통교를 증언하십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들 홀로 그렇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예언자들을 시켜 말씀하신』(히브리1, 1)구약은 이 하느님의 위격적 신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구약계시의 몇가지 요소들은 구약계시의 몇가지 요소들은 틀림없이 우리가 복음서에 가지고 있는 것의 준비를 이루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아들만이 우리를 이 신비에 이끌어 들일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뵌 적이 없기』때문에 아무도 그분의 내적 생명의 신비를 몰랐습니다. 아들 홀로『아버지 품안에 계신 외아들만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요한1, 18).
아버지, 아들, 성신
3、앞의 교리 과정에서 이계시의 주요 양상들을 고려할 수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아들됨에 관한 진리를 아주 명백하게 관상할 기회가 우리에게 허락됐습니다. 이제 이 묵상의 한주기를 마무리하면서 사람의 아들-마리아의 아들-의 하느님 아들됨에 관한 진리와 더불어 아버지와 성신의 신비를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두드러진 사건 몇가지를 상기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연대적인 순서로 볼 때 첫째 것은 나자렛에서의 잉태고지의 순간입니다. 천사의 말에 의하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실 분은 지존하신 분의 아들,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이 말씀으로 하느님은 아버지로 계시되고 하느님의 아들은 성신의 작용을 통해 태어날 분으로 제시됩니다.(『정신이 너에게 내려오실 것이다』루까1, 35). 그래서 잉태를 알리는 기사는 성부, 성자, 성신의 성삼적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신비는 또한 아버지께서 위에서 내려오는 목소리를 통해『사랑하는』분으로 아들을 증언하셨고 그 목소리를 따라 성신이『비둘기 모양으로 그분위에 내려오신』(마태오3, 16) 요르단강에서의 세례 중 신현(神現)에도 현존합니다. 이 신현은 예수께서 메시아 활동을 시작하실 때 나자렛에서『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나를 보내셨다…』(루까4, 18 이사야61, 1 참조)고 언급하신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을『가시적으로』확인시켜 주는 듯 합니다.
불가사의한 친교
4, 그분의 사명이 전개되면서 우리는 예수님 친히 당신 청중들을 성삼의 신비에 이끌어들이기 위해 사용하시는 말씀을 발견합니다. 특히 성 루까에서와 마찬가지로(10, 21~22) 마태오 복음서에도(11, 25~27) 『기쁨에 넘친 선언』이 나옵니다. 『기쁨에 넘친』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루까의 본문에 다음과 같이 나오기 때문입니다.『바로 그때에 예수께서 성신을 받아 기쁨에 넘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0, 21)『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 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마태오11, 25~27).
『성신 안에서 예수께서 기뻐 용약하심』의 결과로 우리는『하느님의 깊이』속으로, 영께서 홀로 헤아릴 수 있는 저 깊은 밑바닥으로 저 하느님 생명의 내적 일치 속으로, 저 불가사의한 위격들의 친교 속으로 이끌어 들여집니다.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 나자렛예수] 182. 성삼을 계시하시는 예수 (상)
발행일1990-06-10 [제1708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