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두번째 임무, 목공예 성물 작업장 대전교구 ‘진산성지 공방’
“우리가 왜 나무를 다듬느냐고요?
성지개발에 도움되고 싶어서죠”

5월 31일 대전교구 금산 ‘진산성지 공방’ 회원들이 작업 중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에서 세 번째 이창덕 신부와 네 번째 김영교 신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바오로), 권상연(야고보) 두 순교자의 고귀한 정신을 기억하는 대전교구 진산성지에 원로사목자와 사회 각계 원로들이 나무를 다듬어 성물로 빚어내는 목공예 공방이 들어섰다. 바로 ‘진산성지 공방’이다.
지난 5월 31일. 오전 10시가 되자 한두 명씩 회원들이 공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장장’으로 불린다는 이창덕 신부(대전교구 원로사목자)는 작업 앞치마 차림이었다. 이 신부는 회원들과 조각에 쓸 나무를 자르고 목선반 등 목공기계를 돌렸다. 교구 원로사목자인 김영교 신부도 장비를 갖추고 나무 다듬기에 나섰다. 매주 금요일이면 벌어지는 풍경이다.
진산성지 공방은 원로사목자와 은퇴한 평신도들이 함께 나무 조각(彫刻)으로 신앙을 표현하고 이를 성지개발에 내어놓는 현장이다. 현재 공방 회원은 이창덕 신부, 김영교 신부 등을 비롯한 7명이다. 평신도 회원들은 의대 교수, 화가, 공군 파일럿, 과학자 등 이력이 다양하다.
공방 설립은 2016년 이창덕 신부가 사목 현장에서 물러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신부는 원로사목자로서 남은 삶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생각하다가, 기도·봉사와 함께 사목 생활 동안 시간적 여유가 없어 손대지 못했던 취미활동을 떠올렸다. 그리고 ‘온기’가 느껴지는 ‘나무’를 선택했다. 사람의 온기를 전달하는 나무를 통해 세상에 따뜻함을 나눠주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진산성지 공방’에서 이창덕 신부(오른쪽)와 공방 회원이 조각에 쓸 나무를 다듬고 있다.
첫 작업은 4명으로 시작됐다. 이창덕·김영교 신부와 함께 박장규(안토니오·대전 목동본당) 교수, 홍용선(요셉·대전 대흥동주교좌본당) 작가가 합류했다. 모두 목공예는 처음이었다. 전문가를 찾아 수개월 동안 기본을 배운 이들은 책과 유튜브 등을 통해 스스로 나무 조각의 틀을 쌓아가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성작, 성합, 촛대, 손에 쥐는 십자가 등이 제작됐다. 뜻을 같이하는 회원도 늘었다.
작업의 지향은 진산성지 개발에 보탬이 되는 것이다. ‘사목 현장에서, 사회에서 은퇴한 이들이 한국교회 첫 순교자의 얼이 담겨 있는 성지개발에 어떻게 협력할까’라는 고민이 담겼다. 손에 쥐는 십자가와 우드 펜 등에 ‘진산성지’를 새겨 성지 성물방에 선을 보인 것도 같은 흐름이다. 은퇴 후 여가 문화 활동 차원으로 싹을 틔웠던 공방이 나눔과 재능기부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지난 5월 25일에는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165㎡ 규모 공방 축복식이 거행됐다. 이전에는 성지 한쪽 컨테이너에서 작업했던 터. 공방은 이를 계기로 원로사목자와 지역민들에게 참여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창덕 신부는 “정성껏 나무를 깎고 다듬어서 신자들이 늘 가까이 손으로 매만지고 거룩함을 느끼는 성물을 만들고 싶다”며 “그 안에서 교회와 사회 원로들이 목수였던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