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수고해주신 수원교구 장금구 신부께 감사하며 이번호부터는 마산교구 장병화 주교의 회고를 연재한다.
장병화 주교는 1912년 7월 4일 대구시 남산동에서 출생、38년 사제로 서품됐다.
마산교구 문산본당 보좌로 사목활동을 시작한 장주교는 68년에 주교로 성성、 20여년간 제2대 마산교구장으로서 사목활동해오다 89년에 은퇴、 지금은 마산성지여고내 교구 사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89년 2월 박정일 주교의 마산교구장 취임으로 일선 사목에서 은퇴한 나는 주님의 종으로 50여년간 살아온 삶에 대해 늘 감사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몸담아왔던 교구장직에서 물러날때의 섭섭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으며 가끔 옛정을 잊지않고 찾아주는 신자들이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없는 것을 보니 나도 별 수 없는 노인(?)임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
이런와중에 가톨릭신문사로부터의 「노사제 회고」제의는 뜻밖이었으나 나이 80을 바라보는 내가 바쁘게만 살아왔던 지난일들을 되새겨 보는것도 매우 의미있는 일인것 같아 기꺼이 응하기로 했다. 그래서 미리 독자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다소 재미가 없더라도 나와 함께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노사제 회고」를 꾸며 나가주길 바란다.
1912년 7월 4일 대구 남산동에서 아버지 장윤이(張允伊ㆍ안드레아)와 어머니 지데레사 사이에서 5형제중 맏이로 태어난 나는 부친이 3대독자로 자손이 귀한 집안이어서 할아버지ㆍ아버지로부터 귀여움을 무척 많이 받았다.
당시에는 부자가 많지 않았는데 우리집도 무척 가난했었다. 아버지는 남의 논을 빌어 농사짓는 소작농으로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했고 어머니는 남의 집에서 빨래ㆍ바느질감을 가져와 어려운 살림에 한푼이라도 보태고자 고생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기에도 어머니는 한국여성답게 집안내조를 꽤 잘했다고 여기고 있다.
구교우집안 출신인 다른 늙은(?) 신부들과는 달리 우리가족은 모두 비신자이었는데 12살때에 이웃에 사는 교우가 어머니께 입교를 권면、 어머니와 동생 1명과 함께 1924년 성탄절을 맞아 세례를 받았다. 영세후 나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미사에 참석했는데 추운 겨울에는 발이 시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운적도 많았다.
장자(長子)만은 공부시켜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성당에서 천자문ㆍ 동문선습 등을 공부한 나는 그후 10살에 해성보통학교(지금의 효성국민학교 자리)에 입학했는데 한해에 3학년까지 월반하기도 했다.
지금도 「온전히 주님의 특별한 은총」이라고 여기는 나의 사제 성소는 보통학교 5학년때 계산성당에서 사제서품식이 있었는데 새 사제들을 보는 순간 『나도 저렇게 될 수 없는가』하는 의문이 내 머리를 스쳐가면서 느꼈다. 그후 나는 혼자서 몇달을 고민하다 본당신부를 찾아 갔으나 맏아들이고 영세한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번에 거절당했다.
그러나 나는 사제가 되고자 하는 소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1년후 1926년 남산본당 설정과 함께 부임한 한국인 신부에게 사제가 되고자 말했으나 똑같은 이유로 거절당했다.
몇달을 고민하다가 우연히 경향잡지를 보고 당시 덕원에 있는 성베네딕도수도회에 입회、수사가 되려고 결심했으나 이 역시 주교님의 허락을 얻어야만 했다. 그래서 주교님(드망즈 주교)을 찾아가 말씀드렸더니 『부모 모시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결국 3년만에 신학교행(行)을 허락했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신학교가 하기 방학중이었다. 그때는 3년마다 한번씩 신학생을 선발했기 때문에 만일 3년후 입학하게되면 나이가 너무 많아 신학교 입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신학교에서는 다른 과목은 문제없는데 라틴어 실력만 갖추면 입학이 가능하다고해서 본당신부에게 하루 1시간씩 더위와 싸우며 라틴어를 배웠다.
드디어 신학교 교장신부에게 라틴어 테스트 받던 날、 다리가 후들후들거리고 땀은 비오듯이 줄줄 흐르고… 어떻게 시험을 치뤘는지 모를 정도였다. 10분이 지나 필기시험을 마치자 신학교 교장신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본당신부를 불러 합격이라고 했다.
총5점 만점에서 3.5점을 받았지만 (3점이하는 불합격) 그때의 감격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해서 나는 사제 되기로 결심한지 3년만에 드디어 사제가 되기위한 준비단계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노사제의 회고] 제2대 마산교구장 장병화 주교 1.
“사제성소는 온전히 주님 은총”
대구 비신자 집안서 출생
장자 이유로 신학교 입학 어려움 겪어
발행일1990-05-27 [제1706호,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