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주검들이 살아있는 동안의 기쁨과 슬픔을 간직한 채 안식을 취하고 있는 묘지.
겨울바람이 차갑게 몰아치는 혹한 속에서도 묘지를 돌보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일꾼들이 있다.
묘지는 삶보다는 죽음의 그림자가 더 깊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일하는 이들에게 있어 이곳은 생활을 해결해주고 노동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치열한 삶의 터전」이다.
전국을 통틀어 묘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기는 어렵다.
서울로 한정해도 대규모묘지만도 서울시가 운영하는 시립 공원묘지가 망우리ㆍ용미리ㆍ벽제등 5곳、각 본당이 운영하는 묘지가 20여곳에 달하는데 여기에서 조차도 몇명 정도의 사람이 일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묘지일꾼 대부분이 상근으로 고용된 근로자가 아니라 일당을 얼마씩 받고 일하는「일당 근로자」인데다 떠돌아다니며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아 숫자를 파악할만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묘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몇가지 특징이 있다.
대부분이 나이가 많다는 것. 40대 후반에서 7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층이 중년 이후~노년까지 집중돼 있고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학력이나 별도의 기술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젊은 노동자들이 모여들지 않는데는 묘지라는 일터가 갖는 특유의「선입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분위기가 정적인데다 시체를 다루어야 하는 일이 그렇게 유쾌하게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경기도 광탄 나자렛공원안에 있는 서울 종로본당 묘지에서 수년째 일하고 있는 박광호(요셉ㆍ42)씨의 생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가 고향인 박씨는 16살때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노동일을 하다가 몇년전 아는 사람의 소개로 나자렛공원묘지에서 일하게 되면서 아예 이곳으로 이사해왔다.
묘지일은 혼자 하기 힘들기 때문에 몇명이 모여 팀을 이루는데 박광호씨는 6명이 모인 일꾼들의 팀장을 맡고 있다.
하고 있는 일을「굿진다」「광정진다」고도 표현하는 시신을 모실 수 있는 예비직업(구덩이파기등)부터 도묘ㆍ하관예절을 비롯 묘지에 잔디까지 일과 겨울 보수공사 등 여러가지이다.
박씨의 경우 하루 일당은 1만원. 그러나 이 일은 계절을 많이 타기 때문에 일을 나가는 날은 일년해서 한달 평균 15일로 잡고 땅이 얼고 장례가 적은 겨울은 10일 정도로 본다.
그래도 교회묘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고종적으로 일이 제공되고 있고 일이 없을 때는「숙직제」를 두어 하루치 품삯을 주기 때문에 다른 묘지보다는 대우가 좋고 안정감이 있는 편이다.
서울시가 맡고있는 망우리 공동묘지의 경우 시에서 일당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묘지주인들이 직접 일꾼들에게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그 가정 형편에 따라 8천원~기만원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크고 일거리도 고정적으로 잘 공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죽은사람이 산사람과 똑같이 생각될 정도로 이 일이 손에 익은 박광호씨지만 자신을 당당한직업인으로 봐주는 눈길 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가끔씩 울적해 질때도 있다.
『아이들이 2명 있는데 그냥 직장에 나간다고 하지 묘지에서 일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내 생각에는 하나도 나쁜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다른사람들은 그렇게 좋게보지 않으니까요. 옛날 같으면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와함께 노동일의 특성상 해가져야 일을 끝내는 수가 많아 낮이 긴여름에는 12시간가량 일을 하는 때도 있어 근로시간이 좀더 정비가 됐으면 하는 것도 박광호씨의 바람이다.
20~30대의 새파란 젊은이들이나 아기들의 장례를 치를 때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는 박광호씨는 아무래도 있는 사람들은 더 잘 꾸미려고 하기 때문에 묘지에서도 빈부의 차를 느낄수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성실하면서도 강직한 인상을 풍기는 박광호씨는 그래도 신자로서 교회묘지에서 일한다는데 보람을 느낀다면서『공기 맑고 탁트인 자연속에서 일하는 것도 묘지에서 일하는 즐거움』이라고 덧붙였다.
<李美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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