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쑤시는 전신 관절염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병자 초상집만을 찾아 다니며 평생을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일관된 삶을 꾸려온 이보영씨(토마스·67·수원시 장안구 남평동 동진연립)는 2남3녀를 모두 분가시키고 부인 신태순(데레사·65)씨와 함께 요즈음은 더욱 홀가분한 맘으로 교회일에 솔선주범 봉사하고 있다. 이보영씨는 3대째 계승되는 천주교 신자로 태어나 양지본당에서 부모를 따라 11세 때부터 초상집연도를 다니기 시작한것 이 인연이 되어 주위에서는 그를 변함없는 「텃새」로 호칭하기도. 그는 16세때 고향을 떠나 수원에 정착하면서 북수동본당에서 고등동, 지동, 매교동, 조원동본당 등의 분할에 산파역을 담당한, 수원교구 발전에 일등 공신자이기도 하다.
이씨는「남하는 일、따라서 했을 뿐」이라며 좀처럼 운을 떼려 하지 않는다. 그는 27세때 불치의 관절염에 걸려 뼈마디 하나 성한 곳이 없는 폐인의 지경에서 절망을 딛고 일어섰다. 「무릎으로 기어서 성당 계단을 오른다」는 어느 신자의 기사를 본 후 목발에 몸을 의지하고 27세의 젊은 나이에 구역회장직을 맡아 한 곳에서 텃새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석달은 못 산다』는 의사의 말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이 있는 곳, 병자, 초상집이라면 불편한 몸으로라도 달려가 기도와 연도는 물론 염하는 일을 도맡아 해온지가 40여년、이제 염 솜씨는 베테랑급이다.
『이 삶이 어찌 나의 것이라 하겠습니까』라며 『당시 석달은 죽은 목숨이라 하느님을 의지했고 지금까지는 덤으로 받은 목숨일 뿐 아니라 목발 없이도 설 수 있는 건강을 주셨기 때문에 하느님을 따른다』면서 지난 날의 아픔을 회상하며 말하는 이씨의 툭 불거진 손마디 손마디에서 겪어온 역경과 신체의 고통을 잠시나마 읽게 돼 가슴이 짜릿 하다.
병고와 치료비 부담을 노점상의 적은 수입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임에도 성당일을 주도해온 이씨는 81년 최경환 신부(현 고등동 주임)와 회장들의 도움으로 생활안정과 봉사의 타개책으로 「장안 장의사」(수원시 장안동、전화:0331~51~0303)를 차렸다. 그러나 이씨는 『전에는 온전히 무보수 봉사로 마음 떳떳하던 것이 간판을 걸고 돈을 받으며 봉사에 임하다 보니 전과 같이 편치않다』며 『물질적으로 남을 도와 보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40여년간 비신자 초상집도 마다 않고 찾아다닌 그의 전교열의에 가족단위 집단 입교환 영세자가 수백명에, 대자만도 2백 여명이 넘는단다. 북수동본당 선교분과 부장、신협 이사로 교회발전에 몸 담고 있는 한편 4년째 아침 평일미사 복사를 맡고 있어 노인복사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맹수들은 먹이 찾아 배골플지 모르나 야훼를 찾는 사람은 온갓 복을 받아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기록된 시편 34장 10절 의 말씀을 철저히 믿고 사는 이보영씨는 무엇을 먹고 입을가 걱정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일에 평생을 몸 바쳐 가고 있다.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덤으로 주신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신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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