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0월16일 저녁.
로마 성 베드로광장에 운집한 수십만 신자들의 시선은 일제히 「시스띤경당」을 향하고 있었다. 주위는 쥐죽은듯이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윽고 몇분후 시스띤경당의 굴뚝에선 새교황 선출을 알리는 회색의 연기가 솟아 올랐고 광장은 『교황만세』를 외치며 환호하는 신자들의 함성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가톨릭교회사상 2백64번째 교황이 탄생한 것이다. 그 시각은 정확히 78년 10월 16일 오후 6시 18분(한국시간 17일 새벽 2시 18분)이었다.
새 교황은 자신을 전임자의 이름을 이어 요한 바오로 2세라 명명했다.
잠시후 베드로대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세계를 향해 첫 강복을 내릴때 전세계 7억의 가톨릭신자들은 그의 인자한 자태에 감동하며 이렇게 기도했었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폴란드태생으로 크라코프대교구장이던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 그의 교황즉위는 가톨릭교화사상 공산권출신으로선 최초의 교황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비이탈리아인으로선 1523년 네덜란드출신 하드리아노 6세 교황이후 4백55년만의 일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환영과 놀라움을 함께 자아내게 했다.
세계는 이것을 추기경들의 용기있고 대담한 선택으로 환영하였고 교회의 실질적인 쇄신을 상징하는 것을 풀이했다. 일각에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탄생은 동구의 신앙자유와 동서냉전시대의 종식, 나아가 세계평화와 화해무드 조성에 새로운 전기가 될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금년 10월로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즉위 13년째를 맞는 현시점에서 사람들은 그 추측이 전혀 틀리지않았음을 확인하고 있다.
교황으로서 그가 보여준 직무수행능력은 가히 경탄할만한 것들이었다. 정열적인 행동과 교회의 보편진리를 거듭 확인하는 강력한 설교, 지칠줄 모르는 해외순방활동 등은 가톨릭계는 물론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교황즉위 직후인 79년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 실시한 중남미순방을 시발로 그해 6월과 83ㆍ87년 세차례에 걸친 모국 폴란드방문, 그밖에 아프리카ㆍ프랑스ㆍ서독ㆍ미국ㆍ영국ㆍ스페인ㆍ체코 등 세계 구석 구석을 누볐는가 하면 81년엔 필린핀ㆍ일본을, 84년엔 한국 등 아시아지역을 순방하며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용기를 심어주었다.
특히 79년 10월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워싱턴」을 방문, 카터 당시 미국대통령과 가진 역사적인 회담은 바티깐 외교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이었다. 교황은 이 회담에서 난민구호ㆍ인권보호 및 기아방지를 위한 국제적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낙태ㆍ산아제한 등에 대한 교회의 기본적인 반대입장을 재천명했으며, 이스라엘 레바논문제 등 중동평화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함으로써 세계평화와 안정을 희구하는 평화의 사도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또한 미국방문전인 10월 2일 바오로 6세에 이어 두번째로 UN을 방문, 총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1948년 UN이 발표한 세계인권선언은 인류의 도덕적인 흡전에 있어 진정한 이정표로 간주돼야한다』고 강조하고 개인과 고동체의 인권을 존중함으로써 항구한 세계평화를 건설해나갈것을 호소했다.
8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동구공산권의 종주국 소련이 「개혁정책」을 표방하고 나선것과 때를 맞춰 동구공산국가에서 경제ㆍ정치의 민주화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칠도 교황의 발걸음은 어김없이 이곳을 향하고 있었다.
89년 12월 세기적인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은 가톨릭교회와 소련간 72년에 걸친 적대관계의 종식을 상징하는 물론, 이데올로기적 반목을 청산하고 동서대화합과 인류의 화해를 위해 디딤돌을 놓은 역사적 사거으로 기록되었다. 교황은 이자리에서 소련내 교회활동의 자유를 강력히 촉구했으며 급기야 90년 10월 소련정부는 종교자유를 허용하는 새로운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평화의 사도로서 복음의 사자로서 그를 청하고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교황의 사도적 여행은 재위 13년동안 50여회에 이르는 해외순방에 나서 또다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가 그동안 방문한 국가만도 90개국을 넘는다.
세계언론들은 이러한 교황을 두고 「미사일보다 강한 평화의 사도」 「하느님의 운동가」 「회오리바람 보이티야」라고 일컬었고 『교황은 순례자의 소명의식을 갖고 죽음의 현장에 찾아가 평화와 생명을 부활시키고 있다』고 찬양했다.
이같은 정열적인 사목방문과 함께 교황은 교황회칙, 사도적권고ㆍ서한을 비롯 정례적인 각종 사목서한ㆍ메시지등을 통해 인류구원과 세계평화를 향한 그의 사목소신과 교회와 사회구성원들의 사명을 제시해왔다. 지금까지 발표한 회칙만도 「인간의 구원자」 (79년), 「자비의 하느님」 (80년), 「노동하는 인간」 (81년), 「슬라브민족들의 사도들」(85년), 「생명을 주시는 주님」 (87년), 「사회적 관심」 (87년), 「구세주의 선교」(90년),「교회의 선교사명」(91년), 「백주년」 (91년) 등 모두 10가지에 이르러 교황의 왕성한 사목적 활동을 엿볼수 있게 한다.
금세기 가장 활동적이며 국제정치 감각이 뛰어난 교황으로 평가되는 요한 바오로 2세. 그는 올해를 「사회교시의 해」로 선포하고 오는 10월 로마에서 동ㆍ서유럽 전역의 주교들을 소환, 총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있다. 이를 두고 입부에선 교황이 가톨릭을 통한 전유럽의 영적통합을 모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하튼 인간구원과 세계의 평화증진을 위한 교황의 행보는 쉼없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 바오로2세가 처음 집무를 시작할때 한 열렬한 호소를 상기해 봄이 좋을듯 하다.
『겁내지 말고 문을 여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해 문을 활짝 여십시오. 국가간에 국경을 열고, 경제적ㆍ정치적 제도의 문을 열고, 문화ㆍ문명ㆍ발전의 그 광범위한 모든 분야의 문을 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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