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찬미하라
5、 집회서에도 이렇게 나옵니다『찬미의 노래로 주님을 찬송하고 그분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여라. 주님이 이름을 찬미하고…주님을 찬미하며 이렇게 찬송하여라.「놀라와라、주님의 이루시는 모든일이여! 주님께서 명하시는 일은 틀림없이 이루어지리니」…그러므로 「이게 무엇이냐? 왜 이러는냐」라고 말하지 말아라. 모든 것은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진 게 아니냐?』(집회서39、14~16、21).
집회서의 『주님을 찬미하라』는 권고는 교육적인 어조를 띠고 있습니다.
6、 예수께서는 구약에서 이렇듯 의미깊은 이 유산을 받아들여 축복-고백-찬미의 주제 속에서 감사의 차원을 명백히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서적 전통의 절정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제사로 몸과 피를 바치시기 전날 당신 몸과 피의 성사를 세우시는 최후만찬에서 찾게 됩니다. 성 바오로가 말하듯이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고린토전서11、23~24).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공관복음서들이 잔을 두고 감사를 드림을 말합니다.『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건네시자 그들은 잔을 돌려가며 마셨다. 그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르꼬14~23~24:마태오26、27 참조:루까22、17).
『감사를 드린다』
7、 『감사를 드린다』는 표현의 원래 희랍어 말은 eucaristein에서 비롯되며 거기에서 Eucharist(성체성사)가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의 지극히 복된 성사로 제정된 몸과 피의 제사는 시편에서 이야기된 축복과 찬미의 제사(zebah todah)들을 완성시키고 동시에 그것들을 경질시켰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초기부터 디다케(Didache-초세기 말과 2세기초사이에 아마 시리아에서 어쩌면 안티오키아에서 만들어진)본문에 나오듯이 성찬의 집전을 감사와 연결시켰습니다.
―우리 아버지、당신의 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신 당신의 종 다윗의 거룩한 삶에 감사드리나이다…』
―우리 아버지、당신의 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신 생명과 지식에 대해 감사드리나이다…』
―우리 아버지、우리 마음속에 거하게 하신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대해 그리고 당신의 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신 지식과 신앙과 불멸에 대해 감사드리나이다』(디다케9、2-3:10 2)
『감사를 드립시다』
8、 성체성사에 따르는 교회의 감사노래는 교회의 깊은 마음에서 올라오며 참으로 감사드리기위해 사시는 바로 아들의 마음에서 올라옵니다. 교회의 전체 지상 실존이 야고보서에서 언급된 이 기본진리의 계기가 됐다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온갖 훌륭한 은혜와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늘의 빛들을 만드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야고보1、17). 감사를 드리기 위해 사심으로써 사람의 아들 「새 아담」그리스도는『거짓말의 아비』에게서 영향을 받아 「첫 아담의」마음속에 잉태된 죄(창세기3참조)를 근본적으로 이기셨습니다. 감사를 드림은 「처음부터」하느님께 하사받은 선물에 대한 의식을 인간에서 회복시켜주며 동시에 선물에 보답할 용의를、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온 마음으로 하느님께 드릴용의를 표현해 줍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희복입니다. 모든 것이 그 분안에 그 시작과 원천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시다』이것은 교회가 성찬전례 가운데서 하는 초대입니다.또한 이 권고 속에는 지상에서 감사를 사셨던 하느님 아들의 강한 메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소리는 겸손하고 큰 증거로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하면서 소리맞춰 대답합니다.『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림이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 나자렛 예수] 177.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아들 (하)
발행일1990-03-11 [제1695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