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을 위한 기도
7、기도를 계속하시면서도 아들은 말하자면 당신의 지상 사명에 대해 당신 아버지께 보고를 드립니다.『나는 아버지께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뽑아 내게 맡겨 주신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분명히 알려주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이었지만 내게 맡겨 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과연 아버지의 말씀을 잘 지키었습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한17、6~7)…그리고 나서 그분은 덧붙여 말씀하십니다.『나는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세상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이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이 사람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입니다…』(요한17、9).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인』이들이며、아버지께서 그분을 보내셨다는것을 『믿은』이들입니다. 예수께서는 특별히 글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왜냐하면 『나는 아버지께 돌아가지만 그들은 세상에 남아 있을 것이기』때문입니다.(요한17、11). 그분은 『그들이 하나가 되도록』『하나도 잃지 않도록』(그리고 여기서 스승께서는 『멸망할 운명에 놓인 자』를 언급하십니다)『이 사람들이 내 기쁨을 마음껏 누리도록』(요한17、13참조) 기도하십니다. 당신이 떠나실 것을 내다보시고、반면에 당신 제자들은 세상에 남아서 그들의 스승과 똑같이 『그들이 세상이 속하지 않기 때문에 증오에 노출될 것을』내다보시고 예수께서는 기도하십니다.『내가 아버니께 원하는것은 그들을 이세상에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지켜주시는 일입니다』(요한17、15).
◆『진리위해 몸바치게』
8、여전히 다락방에서 기도하시는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청하십니다.『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해 몸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어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17、17~19). 나중에 예수께서는 미래세대의 제자들을 같은 기도안에 포함시키십니다. 그분은 특히 일치를 위해 기도하시는데『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하려는 것이며 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 사람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17、23). 기도가 끝날무렵 예수께서는 더욱 더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앞에서 언급된 주된 생각에로 돌아오십니다.
이런한 맥락에서 그분은 아버지께서 『맡겨주신』모든 이들을 위해『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내가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여주시고 아버지께서 천지창조 이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볼수 있게』(요한17、24) 해달라고 청하십니다.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9、참으로 예수님의「대사제의 기도」는 복음서의 핵심에있는 아들안에서 이루시는 하느님의 자아계시의 종합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간의 일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말씀하십니다(『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습니다』요한17、21). 동시에 그분은 당신이 세상에 와서 이루신 구원사명의 열매들을 사람들 사이에 퍼뜨리도록 기도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의 구원사명에서 나오는 교회의 신비를 계시하시고 「세상」가운데서 앞으로의 그발전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분은 영광의 지평을 열어놓으시는데 그분과 더불어 그분의 앞날을 받아 들이는 모든 이들이 함께 거기에 불리웁니다.
10、최후만찬 기도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와「본체가 같으신」아들로서 아버지께 말씀하시지만 곧 뒤따르는 겟세마니의 기도에서는 그분이 사람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특히 분명합니다.『내 마음이 괴로와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깨어 있어라』(마르꼬14、34)고 예수께서 올리브 동산에 들어가실 때 따르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혼자 되시자 그분은 땅에 엎드렸는데 그분의 기도말씀은 그분의 고통의 깊이를 드러냅니다. 그분은 계속 말씀하십니다『아버지、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지 다 하실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주소서. 그러나 제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르꼬14、36)
◆눈물로 기도하신 예수
11、히브리서가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다』고 할 때 특히 이 겟세마니의 기도를 언급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주셨다』(히브리5、7)고 부연합니다. 그렇습니다. 겟세마니의 기도까지도 들어주셨습니다. 그안에도 역시 - 고통에 대한 인간태도의 진리전부와 더불어 - 구원 사명의 근원에 있는 세상 구원의 의지 속에 무엇보다 예수님과 아버지와의 결합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12、확실히 예수께서는 열두살에 부모님과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가셨고(루까2、41이하 참조) 복음기자들이 말하듯이『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신다』(루까 4、16참조) 것처럼 이스라엘의 종교적 전통과 율법에 의해 결정된 여러 시기에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들이 그리스도의 사적(개인) 기도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특별히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교회는 결코 그것을 잊지 않았고 아버지와 그리스도와의 사적(인격적) 대화에서 교회자신은 기도의 원천과 영감과 힘을 발견합니다. 진실로 기도하시는 예수님 안에는 아버지와의 친밀한 결합속에 온전히『아버지를 위해』사는 아들의 신비가 가장 인격적으로 표현됩니다.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나자렛예수] 175. 아버지께 기도하는 아들 (下)
발행일1990-02-18 [제1692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