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통해 사는 아들
6, 우리가 위에 인용한 성체에 대한 담화(요한6장에서)구절『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는 때로 『나는 아버지를 통해 산다』 (요한6, 57)로 번역됩니다. 방금 우리가 위에서 인용한 요한복음 5장의 말씀은 둘째 번역과 맞아들어갑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시는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부합한다는 뜻에서 『아버지를 통해』사십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친히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때문에 아들의 인간생명, 그의 활동, 그의 지상 생존은 그토록 완전하게 아버지께로 향해있습니다-예수님은 전적으로 아버지를 통해 살고 계십니다-왜냐하면 그 분안에서는 모든 것의 원천이 아버지와 당신과의 영원한 일치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 30). 그분의 일들은 신위격들의 밀집한 통교의 증거입니다. 그 위격들 안에서 같은 신성이 아버지 안에서 같은 신성이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로서 나타납니다-이것은 그분의 청중들 가운데 그렇게도 많은 반대를 불러일으킨 진리입니다.
내가 누군지 알리라
7, 마치 그 반대의 더 깊은 결과들을 예견이나 한 듯이 예수께서는 유다인과 알력이 있었던 또 다른 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만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시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요한8, 27~29)
부자는 영원히 하나
8, 참으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완수하셨습니다. 그분의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으로 그분은 『그분이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을 확고히 하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구속을 위한 구원의 뜻을 성취하셨고 그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결합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원토록 『하나』(요한10, 30)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위에서 돌아 가실 때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루까23, 46)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이 최후 말씀은 최후까지 그분의 지상 실존 전체가 아버지를 향해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통해』살면서 그분은 완전히 『아버지를 위해』사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이 미리 말씀하신대로 『그분을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죽음과 부활의 빠스카 신비에서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대답할 때 살아계신 하느님 야훼께서 옛날에 『나다』라는 똑같은 말씀을 사용했습니다(출애굽3, 13이하)
아버지를 위한 삶
9, 히브리서에서 우리는 몇가지 대단히 위로되는 표현들을 봅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자의 일을 하시니 당신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히브리7, 25). 아들로서 『아버지와 본질이 같으신』그분은 『아버지를 통해 사시고』영원한 구원의 길을 인간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길을 따라 나아가며 『아버지를 위한』그 삶에 참여합시다. 그 삶의 충만함은 영원토록 그리스도 안에 지속됩니다.
[교황님이 가르치는 교리 - 나자렛예수] 173. 아버지위해 사는 아들, 예수 - 하
발행일1990-02-04 [제1690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