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 산 1~45 갈 곳 없고 버려진 형제들의 보금자리「꽃동네」의 기적을 불러일으킨 「거지천사」최귀동 할아버지(81ㆍ베드로) 가 지난 4일 오후 1시 하느님 품안에 영면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어 거리에서 죽어가는 헐벗고 병들고 굶주린 이웃형제자매들을 위해 살았던 최귀동 할아버지의 소리없는 완전한 사랑의 삶은 이미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을 충격과 감동, 가눌 수 없는 부끄러움에로 몰아넣었다.
충북 음성군 금왕면 무극리한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최귀동 할아버지의 본명은 최경락. 귀한 아들이라하여 동네에서「귀동」으로 불렸던 최할아버지는 어린시절 남부러울 것 없이 귀하게 자라 결혼하여 부인과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던 중 2차대전이 터져 일제에 의해 징용병으로 일본 북해도 탄광에 끌려갔다. 그곳에서 탈출하려다 붙잡혀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 마침내 정신 이상자가 되어 주소 꼬리표를 붙인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러나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아편중독이 되어 재산을 탕진하였고 가족을은 뿔뿔히 흩어지고 부인도 이미 떠나 가정은 완전히 파산이 돼 있었다.
오갈데 없는 최할아버지의 무극다리 밑 거지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는 정신장애를 지닌 최할아버지는 맹인과 폐병ㆍ알콜중독ㆍ정신질환에 걸린 거지 18명과 함께 무극다리 밑에서 생활하며 몸조차 가누기 힘든 이들 거지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매일 밥동냥을 하러다녔다.
최할아버지는 다른 거지와는 좀다른 특이한 사람이었다. 돈을 요구하는 일은 결코 없으며 과일을 줘도 받지않고 오직 식사가 끝난 설거지하는 집만을 찾아다니며 먹다남은 음식을 얻어다가 다리밑 움막안에서 병마와 굶주림에 신음하는 거지들에게 나눠 주고, 날씨가 추워지면 누더기를 얻어다 덮어주고, 걸인들이 죽으면 손수 장례까지 치뤄주었다.
동냥후 최할아버지의 남은 일과는 놀이터를 찾아다니며 병조작과 사금파리 등 어린이에게 위험한 쓰레기를 줍는 일이었다.
1976년 9월 가진 것 없이 멸시받는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위해 묵묵히 사랑을 실천해온 절름발이 정신장애의 초라한 거지 최귀동 할아버지와 무극본당 첫 한국인 사제로 부임한 오웅진 신부(현 꽃동네회장)의 만남은 오늘의 「꽃동네」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동상으로 발이 퉁퉁붓고 발가락이 썩어들어가는 절름발이에 깡통을 찬 귀동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가 본 다리 밑 거지들의 생활은 정말 놀라왔습니다』. 최할아버지의 가난하고 눈물겨운 손길과 발걸음에 감동받은 오신부는「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겠다」 는 30여년간 간직해온 꿈이 현실로 다가옴을 직감, 곧바로 전재산 1천 3백만원을 털어 시멘트 세 부대를 사고 벽돌을 찍어 판자집을 마련하여 최할아버지와 거지가족 18명을 살게한 것을 시작으로 꽃동네는 이제 2천여명의 식구와 부지 16만여평에 지체불구자ㆍ정신ㆍ노인ㆍ알코올중독자요양원, 병원, 우체국 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오갈데 없는 부랑인들의 낙원으로 꾸며졌다.
80년 2월 어느날 여느때와 다름없이 거지식구들을 위해 동냥하러 가던중 고혈압으로 쓰러져 희생불가능이라는 진단 이후 대세를 받은 최할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그 이후 매일 미사에 참례, 성체를 모실때는 온전치 못한 정신에도 불구하고 꼭 성호를 그었는데 이를 본 꽃동네식구들은 한결같이 살아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최귀동 할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실천은 86년 2월 15일 가톨릭대상(사랑부문)을 수사하게 했다. 상금전액을「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달라」는 최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꽃동네는 노인요양원「임종의 집」이라는 또 하나의 사랑의 싹을 틔우게 됐고 중풍으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했던 최할아버지는 바로 이곳에서 눈을 감았다. 죽은 후 눈을 기증하겠다는 유서를 남긴 최할아버지의 왼쪽눈은 지난 5일 대전에 사는 27세의 한 맹인청년에게 이식됐다.
욕심없는 지순한 마음으로 소리없는 사랑의 불을 놓고간 최귀동 할아버지의 영결미사는 8일 오후 2시 1천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꽃동네 회장 오웅진 신부, 청주교구 부교구장 이한구 신부를 비롯 10여명의 교구사제 공동집전으로 봉헌됐으며, 유해는「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새겨진 꽃동네 입구 상징탑 아래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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