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구로1동본당 신자들이 3월23일 을지로입구역에서 노숙자들에게 밥을 나눠주고 있다.
때늦은 추위로 옷깃을 여며야 했던 지난 3월 23일, 날씨 탓에 인적이 뜸한 지하철 을지로입구역 안은 고소한 밥 냄새로 가득했다. 오후 10시30분,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노숙자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고, 녹색 조끼를 입은 구로1동 본당 신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밥을 배식하고 있었다.
밥과 국, 김치가 전부지만 용기가 넘치게 꾹꾹 눌러 담은 음식들은 주린 배를 채울 뿐 아니라 마음까지 채워주는 따뜻한 한 끼가 됐다. 매주 토요일에 운영되는 배식은 을지로3가역에서 시작해 을지로입구역과 시청역까지 이어진다. 서울 개봉동·구로1동·신도림동·오류동본당에서 한 주씩 맡아서 진행하며 음식은 각 본당의 후원금으로 마련한다. 한 주에 평균 30만 원 정도로 70~80명의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전국의 본당에서는 각자 특색있는 후원금을 모금해 지역사회를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개봉동본당(주임 이용희 신부)은 5년 전부터 을지로노숙인후원금을 만들어 배식 봉사를 하고 있으며, 1년 전부터는 같은 지구에 있는 구로1동본당과 신도림동본당, 오류동본당이 합류했다. 이날 배식 봉사에 참여한 주재민(프란치스코·47·서울 구로1동본당)씨는 “토요일 오후 6시부터 모여 정리하면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다”라며 “가족과 보낼 시간을 희생하며 봉사에 참여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힘든 기색 없이 보람을 느끼며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교구 성남 상대원본당(주임 이정철 신부)은 장학사업 후원금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의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위해 바오로 장학회를 꾸린 상대원본당은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 학생들에게 매달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노량진동본당 신자들이 3월 24일 오후 7시 미사가 끝난 뒤 공시생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하 공시생) 신자가 많은 노량진동본당(주임 남상만 신부)도 특색있는 후원금을 운영하고 있다. 본당 청년의 80% 이상이 공시생인 노량진동본당은 공시생 후원금을 통해 주일 저녁 7시 미사 이후에 공시생 신자 100여 명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다. 빵, 햄버거, 핫도그 등 간단한 간식을 비롯해 평소에 챙겨먹기 어려운 과일까지 매주 다양한 메뉴를 준비한다.
공시생 박지영(살로메·27·춘천 솔올성당)씨는 “공부하느라 바쁘기도 하지만 미사 시간만이라도 여유를 가질 수 있어 빠지지 않고 주일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며 “한 끼 식사를 하는 게 귀찮을 때도 있는데 성당에서 공시생들을 배려해 간식을 나눠주셔서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노량진동본당 관계자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온 공시생들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며 “시험 준비 기간이 오래되다 보면 경제적인 부담을 느낄 수도 있는데, 그런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자 작은 정성을 준비해 신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