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말을 하갔어. 전부 다 달라졌는데…”
사제서품 60주년을 맞은 은퇴사제 임충신 신부(마티아·85세)는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듯 이렇게 회경축 소감에 응한다.
한국에서 라틴어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임충신 신부. 85세라는 고령에도 불구, 매일 오후 2시면 으레 산책길에 나서는 임신부는 조용한 학자적 성품에 어울릴 만큼 아주 검소하게 살아온 사제이다.
1907년 2월 17일 황해도 송화에서 출생, 11세 되던 해인 1917년 서울 용산 소신학교에 입학해 1931년 5월30일 명동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임충신 신부는 서품 받은 바로 그해 혜화동 신학교로 부임, 3년간 라틴어강의를 맡았다.
“난 지금 천주경이고 성모경이고 아무 것도 몰라, 모두 다시 배워야해. 옛날에는 기도문이고 고백성사고 할 것 없이 모두 라틴어로 돼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바뀌었어. 얼마 전 조카신부(임인섭 신부·세종로보좌)가 왔길래, 미사책 한권을 부탁했더니 조카 말이 미사책이 곧 개정될 것이라며 나중에 구해 주겠다더군. 그러니 또 고친다는거 아냐?”
임신부는 미사책·기도문을 비롯 굳이 고칠 것까지 없는 교회용어조차 다 뜯어고치는 작업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내심의 불만을 털어놓는다.
지난 60년간의 겸손하고 검소했던 사제생활을 한눈에 보여주는 듯 철침대와 나무책상, 의자, TV, 책꽂이만 가지런히 놓인 작은방에서 임신부는 날마다 미사봉헌과 뉴스시청, 교회서적 탐독 등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평소 경향잡지 등 교회서적을 펼쳐 놓고 신학생시절 등 옛날을 회상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임충신 신부.
검버섯이 폈지만 고령답지 않은 정정함으로 연신 팔·다리에 매달리는 어린 손자를 감싸 안는 모습이 일제·공산치하에서 압박과 설움의 세월을 보내온 어른의 그림자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친근하게 느껴진다.
“자나 깨나 이북에 계신 어머니 생각뿐이었지. 다섯 해가 지나기만 손꼽아 기다렸지. 다섯 해만 지나면 잊어버릴 줄 알았거든. 아무리 잊어버리려 해도 잊히지가 않아. 그런데 이제는 생각도 안나… 그래도 제일 생각나는 건 누이동생인 것 같아”
1934년 신학교에서 황해도 은율로 첫 본당사목을 떠난 임신부는 황해도 신천·서흥·곡산 등지의 본당을 사목하다 곡산본당 재임시 6.25동란을 맞았고 1950년 그해 월남했다.
동란 중 산속에 피신해 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회복되자 다시 본당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임신부는 당시 북진한 이한림 장군의 도움으로 서울 방문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뜻하지 않던 1.4후퇴로 모친과 누이동생, 그리고 곡산본당 신자를 다시는 볼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고(故) 노기남 대주교와 동창이기도한 임신부는 월남 후 충주와 서울 수색본당에서 사목생활을 하다 지난 1968년 사목일선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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