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점칠 수 없는 삭막하고도 어두운 현실 속에서 어김없이 새해의 첫날이 밝아온다. 연일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초강력 사건으로 인해 언제, 어느 때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행복을 빼앗길지 모른 채 전전긍긍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속에서 교회는 희망의 불을 지펴야할 때이다. 91년 새해아침, 본보는 작은 등불을 켜들고 어두운 세상을 향해 밝히며 살아가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30년을 뱃사람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자 노력하는 임순오씨(필립보)와 억압받는 여성들에게 희망의 불을 당겨주며 25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가정법률상담소 부소장 차명희씨(요안나). 이들의 등불이 사회 구석구석에 비춰지길 기대해본다. <편집자 주>
새해, 첫 아침을 여는 차명희씨의 소망과 소임은 지나온 삶의 여정만큼 질박하고 두텁다.
1991년도는 개정된 새 가족법이 시행되는 첫해이며, 각여성단체에서는 ‘가정폭력 추방’을 기치로 내걸고 활발한 운동을 펼칠 것이 예상돼 이에 맞갖은 활동이 새해 벽두부터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91년도 새아침에 그녀가 밝혀든 등불의 크기는 얼마간 할까?
가정법률상담소 부소장(법률구조사업담당) 차명희(요한나·48세·서울 여의도본당)씨. 올해는 그녀가 가정법률상담소에 몸담은 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4반세기 동안 한 번의 외도도 없이 오직 여성들의 권익보호에 몸바쳐온 그녀는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 볼 여유도 없이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왔다.
삶의 질곡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파하는 여성들의 한 맺힌 몸짓이 그녀를 앞으로만 내닫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일그러진 가정의 위상정립과 여성 인권회복에 바쳐진 그녀의 지나간 25년 세월을 지탱해 온 것은 말하지 않아도 신앙의 힘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혼탁한 이 시대, 우리의 삶속에서 짓밟히고 고통 받는 여성들에게 희망의 불을 지켜주는 작은 불씨로서 그녀는 참 신앙인이었고 움직이는 작은 교회였다.
“금년에는 새 가족법이 시행되는 첫해인 만큼 거기에 따른 순발력 있는 대응이 필요할 것입니다. 새 가족법이 보다 많이 알려져 올바로 행사할 수 있도록 계몽과 교육은 물론 제도적 보완, 후속조치 등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겠지요”
차명희씨는 올해에는 이혼이 두드러지게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개정된 법에 따라 권리를 더 보장받기 위해 이혼을 미루어왔던 사람, 또 이혼을 고려중에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상담소를 찾고 법정에 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씨는 여성들이 권리를 찾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거기에 따른 책임의식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한국의 여성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고 진단한 차명희씨는 여성들의 의식수준이 향상되고 여성인권이 신장됐지만 사회적 관행과 인습의 높고 두꺼운 벽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부딪히고 상처받고 좌절한다고 안타까와한다.
차씨는 “40년에 걸친 여성계의 투쟁으로 가족법이 개정되는 등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이를 지키고 발전시킬 의지가 없이는 보장된 제도를 활용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기존제도에 맞서 싸우는 한편 취득한 권리에 따른 책임감에도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차명희씨는 지난 66년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 은사인 이태영 박사의 권유도 가정법률상담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해에는 이태영씨가 설립한 여성법률 상담소가 설립 10주년을 맞았으며 보다 활발한 활동을 위해 가정법률상담소로 개칭, 별도 법인으로 재출범하는 해이기도 했다.
이처럼 뜻깊은 해에 햇병아리 사회초년생으로 실질적 법률상담에 임한 차씨는 한해 두해 보내면서 두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가정법률상담소를 찾는 이들에게는 법조항의 한줄 한줄이 바로 그들의 인생을 좌우하게 되며 또 자신의 한마디 한마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니 긴장 될 수밖에 없었다.
25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들은 모두 가정적 위기에 봉착한 채 어떤 결정을 해야만 하는 절박하고도 안타까운 사람들이었기에 어려움은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그 부피를 더해가기만 한다.
억압·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볼 때 이혼을 권유해야 하는 일이 신앙인의 입장과 대립될 때 심한 갈등을 느끼기도 하는 차씨는 가정윤리 회복을 위한 교회의 몫을 강조한다.
“현대의 이혼율이 높아가는 것은 바로 출발인 결혼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교회는 젊은이들이 올바른 결혼관을 가질 수 있도록 혼인강좌를 비롯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운용해야 합니다”
가정법률 상담소 개설 35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새 회관 건립과 지부설치에 주력하겠다고 밝히는 차씨는 유신정권하의 암울했던 지난날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열성과 의욕을 보인다.
가정법률상담소 소장 이태영씨가 76년도 3·1명동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자 도움을 약속했던 많은 이들이 본의 아니게 등을 돌리기도 했다. 그녀는 시대적 아픔 속에서 홀로서기를 감내해야 했고 차가운 시선을 이겨내야 했다.
76년 완공된 여성 백인회관의 건축총무일을 맡아 소장 대신 고군분투하던 일들은 아직도 아픔과 더불어 조용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76년 인권옹호 유공자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한 차씨는 가족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인권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25년이 지난 오늘,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여성들이 한 인간으로서 제자리를 찾아올 수 있게 또 여성 본연의 모습을 찾게 한 그녀가 밝혀든 등불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그녀가 만난 후 비로소 홀로서기를 할 수 있었던 수천수만의 여성들은 작은 불씨 하나로 새 삶의 불을 당긴 채 저마다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나온 25년은 자신을 위해 투여할 시간조차 없이 남을 위해 봉사했으며 그 결실로 가정법률상담소의 탄탄한 오늘과 내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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