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특정한 사형수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지라도 사형수의 부모와 가족을 기억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어느 사형수의 머리위에 돌멩이를 집어던질 사람은 많을 지라도 아마도 사형수의 부모와 가족에 대해 돌멩이를 던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런데 가정이라는 마지막 사랑의 끄나풀마저 잘라버리는 냉혹함이 있으니 그건 곧 사형제도라는 법이다. 법이 사형수가 아닌 사형수 가족에 대해서 마저 그토록 가혹한 돌멩이를 던질 수 있을까? 법이 곧 국민 양심의 산물이라면 우리도 법이라는 이름을 빌려 소중한 가정의 파멸을 돕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법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면에서 법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단지 눈앞의 현실만 보는 듯싶어 괴로울 때가 많다. 그것도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인간의 생명단죄(生命斷罪)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91년도 이맘때의 일이다. 사형집행이 있은 다음 날이기에 아침 일찍 서울 구치소에서 죽은 시신을 인수받아 교도사목회에서 마련한 묘지에서 장례미사를 드리고 안장할 쯤 죽은 딸의 부모님은 넋이 빠져나간 모습으로 울부짖으며 다가와 하는 말씀이 “신부님, 저의 딸을 아침에 보았을 때 어린것이 두 눈을 감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제발 부탁이온데 땅에 묻히기 전에 딸애의 두 눈을 감게 해주십시오”하며 통곡하며 매달렸다. 그래서 다시금 관 두껑을 열고 딸의 두 눈을 감겨주며 딸의 곁을 떠나려하지 않으시는 부모님의 한 맺힌 울음을 들으며 그곳에 함께 한 모든 분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비록 내 딸이 사회로부터 지탄받아온 사형수라 하더라도 교도소 골방에서나마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희망으로 살아오신 그 부모님의 마음을 익히 아는 터라 나의 마음은 더욱 터질 것만 같았다.
과연 법은 법일 따름인가? 법이 생명이 되어줄 수는 없는 것인가? 법이 한 가정의 마지막 혈연의 정마저 끊어버릴 정도로 법도 법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