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도 마르코 축일에 서울 수녀원에 경사가 났다. 성인이 보낸 천사인지 갓난 사내아기가 공동체에 들어온 것이다. 어느 누군가 온밤을 새워서 울었으리라. 따스한 눈물방울이 아직도 포대기에 남아서 병원 소독 냄새와 함께 우리 곁으로 왔다. 현관 수녀님이 미등을 끄고 밖으로 나왔을 때 아기가 발견되었다. 아기의 엄마는 수녀님이 밖으로 나오는 걸 확인하고 떠나갔으리라. 밤새도록 울고 보채는 아기를 달래느라 원장수녀님은 뜬눈으로 날을 새웠고, 많은 수녀님들이 버려진 아기의 울음소리에 아픈 가슴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원장수녀님은 엄마로서의 일을 도맡아 우유를 먹이고 몸을 씻겼다. 파출소에 신고하여 국내에서 기를 자리를 알아보기도 했으나 허사였다.
아무리 버려진 아기지만 이름 석 자와 생년월일이 적혀 있기 마련인데 야속하게도 급박하게 이 세상 밖으로 쫓겨난 듯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 상주하고 계시는 세 분 신부님 성을 따서 백윤전이라 이름 짓고 마르코로 세례성사를 주었다.
모세를 바구니에 담아 물 위에 띄웠더니 마침 목욕을 하던 파라오 공주에게 발견되어 궁전에서 키움을 받아 이스라엘인을 이끄는 영도자가 되었었다. 그러나 마르코는 젖먹여 키울 엄마도 갈대숲에 숨어 있지 않았으니…도대체 마르코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일까? 미혼모일까? 아버지는? 기도의 제목이 하나 더 늘었지만 좀 더 자숙하지 못하고 무분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실이 걱정이었다. 한편으로는 낙태살인을 면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 싶었다. 홀트 양자회에 연락하기로 결정을 하자 모두들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어느 날 수녀원 앞에서 방황할지도 모르는 마르코 엄마를 생각하면서…
홀트 양자회에서 마르코를 데리러 온 날, 우리들은 가슴이 아파 모두 눈물을 흘렸다. 유럽쪽으로 떠난다는 마르코, 떠나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대한민국의 사내아이, 우리 아이를 외국 사람에게 보내는 날, 사진이라도 찍자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생명은 이제 울지도 보채지도 않았다.
“마르코야, 부디 건강히 행복하게 자라라. 먼 훗날 다시 만날 때까지 널 위해 기도하마. 안녕”
우리는 떠나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기도를 했다.
그가 떠난 지 【◆년, 어엿한 소년으로 자라있을 백윤전 어린이를 그리며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