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지방에 출장을 갔던 신부님의 실화입니다. 그날 신부님은 출장을 마치고, 숙소로 가려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는 버스 시간이 1시간 이상 남았더랍니다. 순간, 머리도 길고 해서 이발을 하려고 주변을 둘러보니 미용실이 세 군데 보였답니다. 그래서 어느 집을 갈까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그중에 손님이 없는 집이 있어서 들어갔답니다. 들어갔더니, 연세가 좀 있어 보이는 미용실 자매님이 반갑게 맞아주셨고, 미용 의자에 앉았답니다. 그런 다음 자매님은 그 신부님의 목에 수건과 흰 천을 두르며 거울 속에 비친 신부님의 얼굴을 보고는 묻더랍니다.
“혹시 결혼은 하셨어요?”
그 말을 듣자, 신부님은 속으로 ‘결혼했는지를 왜 물어보실까!’ 그래서 신부님은 웃으며,
“말 안 할래요!”
그러자 자매님은 또다시 묻기를,
“그러지 말고, 말해 보세요. 결혼은 하셨어요? 안 했으면 내가 좀 도와주려고 그래요.”
그러자 신부님은 속으로 ‘뭘 도와준다는 말이지?’라고 생각하며 “말은 안 하고 싶지만…. 음, 사실 결혼에는 관심이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자매님은 그 신부님의 머리 손질을 하다 말고, 거울로 신부님 얼굴을 쳐다보더니,
“그럼 내가 좀 도와줄게요. 잠깐만요!”
그러더니 그 자매님은 어디론가 들어가더니, 뭔가를 가지고 오더랍니다. 그런 다음,
“어때요, 잘 어울리죠? 우리 아들도 이 가발을 쓰고 장가갔어요. 딱 어울리는데.”
그분이 가지고 온 것은 알고 보니 가발이었습니다. 머리가 거의 반 이상 빠진 그 신부님의 얼굴을 보고, 자매님은 가발을 소개시켜 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 후, 신부님은 미용실을 나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은 미용실이면서, 그 지역의 가발을 취급하는 곳이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큰 충격에 빠진 그 신부님은 정신을 가다듬고 말하기를,
“아니 괜찮아요. 그리고 저 가발 안 씁니다. 이대로 살 거예요. 그리고 사실, 저 결혼했거든요. 좀 있다가 우리 마누라랑 시장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그리고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답니다. 조금은 민망하고 미안했던지 미용실 자매님은 머리 손질이 끝날 때까지 그 신부님에게 한 마디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 그 신부님은 머리 손질이 끝날 때까지, 좀 전 가발을 쓴 자신의 모습과 과거, 긴 머리 흩날리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더랍니다. 계속해서 아련히 떠오르던 그 옛날, 머리숱이 참으로 많았던 그 시절. 씁쓸한 마음에 미용 의자에 앉은 채, 예전 자신의 머릿결을 기억 저편 너머로 날려 보내고!
머리 감겨 준다는 자매님의 말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서 샤워를 할 것이라 억지로 우기며 미용실을 빠져나온 그 신부님. 터미널 옆 시장 입구에서 실제로 사랑하는 하느님을 생각하며 묵주를 꺼내 기도했답니다. 그리고 어느덧 차 시간이 되었고, 승차한 후 30분 정도 차를 타고 내렸습니다. 그리고 숙소까지 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을 보며 주님께 물었답니다.
“주님, 제게서 머리카락을 왜 그리 가지고 가시려 하는지요? 정말 제 머리카락이 당신께 꼭 필요한 건가요?”
그날 신부님은 그렇게 소리를 질러 봤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고, 시골길 양 옆 길로 쓸쓸한 바람만 날리더랍니다. 그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머리숱이 많이 빠지고 있거나 이제는 거의 없는 분들의 슬픈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머리 흩날리던 그 추억도! 그래도 힘을 내셔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마음을 다 알고 계시니!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