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에서 제천가는 국도를 타고 신림면 가리파재를 넘으면 유서 깊은 신앙의 터전인 ‘용소막’이 나온다. 배론성지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인 이곳 용소막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뒤에 우뚝 솟은 삼봉산이 병풍처럼 들러쳐 있는 언덕 위에 고풍스런 성당과 아담한 적벽돌 건물 하나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고 선종완 신부 기념관’
히브리 원문을 번역, 한국 가톨릭교회에 「우리말 구약성서」를 처음으로 내놓은 고 선종완 신부의 유품이 전시돼있는 곳이다.
선종완 신부가 창설한 성모 영보 수녀회가 원주교구와 용소막본당 신자들의 협조로 선 신부의 고향이요 출신본당인 용소막성당 유아원을 개조, 지난 88년에 개관한 ‘선종완 신부 기념관’은 최초로 히브리 원본을 번역한 우리말 구약성서 원고와 공동번역 원본, 친필 강의록, 겨자씨, 카타꼼바 흙, 이사야서 사본 등 6백여 점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국내 성서학자로서는 유일한 전시관인 고 선종완 신부 기념관은 또한 본당 재정 적자로 한 푼의 생활비 지원도 받지 않은 채 두 명의 성모 영보회 수녀들이 헌신적으로 관리하고 있어 찾는 이들을 숙연케 하고 있다.
구약성서 번역가, 성서 신학자, 신학교 교수, 성모 영보회 수녀회 창설자라는 선종완 신부의 직함과는 달리 그에 대해 아는 신자들은 많지 않다. 그만큼 드러나지 않고 잔잔하게 사신 분이다.
장발과 긴 수염으로 화제를 모았던 선종완 신부는 명문대가 구교우 집안의 3대독자로 태어나 1942년 사제 서품 후 1976년 선종할 때까지 34년간의 사제생활 중 10년은 일본 중앙대학 경제학과와 법학과, 로마 울바노대학과 안젤리꿈대학, 로마 성서대학, 예루살렘 성서연구 대학원 등에 유학했고 나머지 24년은 가톨릭대학 신학부 교수로서 성서학을 강의했다.
이 땅에 복음이 전래된 지 1백70여년 만에 히브리 원본에 기초한 최초의 우리말 구약성서인 ‘창세기’를 1958년 간행한 선종완 신부는 그 후 13편의 구약성서와 공동번역 구약성서를 펴내, 국내 성서보급에 엄청난 공을 세웠다.
우리말 구약성서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구약성서 번역사업에 위대한 공을 세운 선 신부는 성서학자로서뿐 아니라 말씀에 따라 한평생 겸손과 청빈, 사랑을 철저히 실천하신 분으로도 유명하다.
20여 년간의 과도한 성서번역 작업으로 건강상태가 악화돼 탈모증과 불면증 위장병으로 고생하던 선 신부는 공동번역 탈고 후 간암으로 쓰러졌으나 치료비가 없어 병원 측의 만류도 뿌리치고 스스로 퇴원한 일화도 있다.
한평생 신학생과 수녀들을 가르치면서 유품으로 남긴 것이라고는 40여 년간 애용했던 「라틴어 불가타 성서」와 번역원고, 강의록, 중고 타자기뿐이었다.
부족한 관리비와 시설 미비로 자연 훼손돼가는 원고를 안타까이 지켜보며 훼손된 원고 먼지를 정성스레 훔쳐내는 석 막달라 관리수녀는 “많은 신자들이 선 신부의 기념관을 방문, 한평생 말씀으로 사신 공인의 넋을 기려 성서를 생활화하는 마음을 배워갔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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