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에서 9숫자 안에 사는 인생을 아시나요? 일학년 일개월 동안 산수시간에는 숫자 싸움이다. 일학년 보결수업을 하러갔는데 가서 보니 나름대로 긴 세월을 살았던 교실이며 함께 살아온 그 세대의 어린이들을 대하니 남달리 감회가 깊었다. 아이들도 처음 보는 수녀님이라 호기심과 질문이 많았다.
“수녀님은 몇 학년 가르쳐요?”
“처음 보는 수녀님이네요”
그쯤에서 나는 간단히 내 이름을 칠판에 쓰고 몇 년 전까지 이 교실에서 일학년을 가르쳤다고 알려주니까 너무 신기한 모양이다.
“정말이에요?”
“정말이지?”
“얼마나요?”
“1년, 2년, 3년…”하면서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접으며 천천히 세었다. 마침 그 시간이 산수라 다행이었다. 수가 더해지자 초롱초롱 눈망울이 불을 켜더니 손가락에 일제히 집중되었다.
“9년, 10년…”하고 나니 “후유-.”하는 소리와 함께 책상을 두드렸다. 아이들이 숫자에 맞추어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계속했다. “11년, 12년…” 10단위가 넘어가자 책상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16년 17년” 하니까 “꽥-” 고함을 치지 않는가?
삽시간에 교실은 수라장이 되고 아이들은 일어나서 떠들었다. 그때 유리창 부근에 앉았던 여자아이가 “그런데 아직도 안 죽었어요”하고 물었다.
순간 교실은 파도가 잔 듯 조용해졌다. 한대 꽝-하고 얻어맞은 심정이다.
우선 교육적으로 수습하느라 숫자는 10을 넘어도 얼마든지 있다고 대답을 했지만, 나에겐 묵상거리가 생긴 셈이다.
아이 말대로 나는 왜 아직도 안 죽었을까? 정말 신비스럽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 중 진금, 병걸, 윤수, 미애, 하연…등등 많은 애가 병이나 사고로 어린나이에 일찍 하늘나라로 갔다.
살아있음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남아서일까? 오랜 세월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소임을 받은 나, 다른 무엇(?)을 소임으로 받고 싶었던 유혹은 사라지고, 작고 조그만 겨자씨 안에 꼭꼭 숨어 살고픈 소망이 다시금 되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