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한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영국신부님이 계신 버밍엄에 가는 날이다. 숙소주인 여자가 알려준 대로 빅토리아 버스 정류장에 가서 표를 구하려고 줄을 섰다.
‘매표원이 하는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걱정을 하며 겨우 끊게된 표값은 13파운드(약 2만원)였다. 차비가 너무 비싸 심장이 덜컥 거렸지만 차 시간이 촉박해 지체할 수 없었다.
11시 30분 버스니까 딱 1분전이었다. 버밍엄행이 서있는 16번홈을 향해 발바닥에 부리나케 달렸다. 여경찰에게 16번홈의 여러 버스 중 버밍엄 가는 버스를 물었다.
그녀는 막 출발하려고 폼을 잡는 버스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는 급한 김에 막 쫓아갔다. 그때 뒤에서 그 여경이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버스를 세워 주려는 것인 줄 알고 멈추지도 않고 덩달아 악악대며 뛰어갔다.
하지만 그 버스는 야속하게도 떠나버리고 말았다. 허탈하게 돌아서는 순간 여경은 그 옆에 가만히 서있는 버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웬 창피.
버스는 정확하게 두 시간 반 만에 버밍엄 역에 도착했다. 신부님은 빨간 승용차를 몰고 오셔서는 나를 신부님이 계시는 수도원으로 안내했다. 작은 초등학교까지 한 울타리에 있는 작고 아담한 수도원이었다. 내가 버밍엄에서 민박할 집이 바로 이 초등학교 선생님 댁이었다.
하룻밤 나를 재워줄 민박집으로 향했다. 그 집은 부부가 모두 학교선생님이었고 중학교 다니는 두 딸이 있었다. 얼마나 친절한지 몸둘바를 모를 정도였다.
내가 영어를 천천히 해달라고 하자 상상 밖으로 구렁이 기어가는 것보다 더 느리게 말을 해주었다. 더군다나 내가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 세계지도를 가져 다가 여기가 코리아라며 자기네들끼리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것이었다.
밤이 깊자 부부는 내가 묵을 방을 안내해 주었다. 그 방은 꼭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님 방처럼 예뻤다. 하얀 레이스가 달린 실크 침대에 먼지라도 묻을까봐 조심조심 누웠다.
그러나 피곤했던 탓인지 점점 잠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별들도 어느새 잠이 들고 있었다.
다음날은 대학의 도시라는 옥스퍼드로 향했다. 인구의 1할 정도가 학생이라는 작고도 큰 도시였다. 도시 전체가 옥스퍼드대의 단과대학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 아름다움이 너무 잘 어우러져 있어 옥스퍼드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9세기에 세워진 옥스퍼드, 이곳저곳에 가면 고딕풍의 첨탑이 삐쭉 서 있어 전체적인 인상이 낡고 엄숙하고 또한 어두운 느낌이 든다. 몇 백 년을 두고 그을음이 내려앉아 시커먼 대학도 있고 전후에 늘어날 학생을 감당하려고 지은 흰 건물들도 있었다.
저녁때는 런던으로 돌아왔다. 알제리아 여행자인 저밀과 친구가 되어 얘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인상이 험악해 식당에서 눈만 맞아도 얼른 고개를 숙였는데 순진한 친구임을 알게 되었다.
그가 서양악기인 봉고를 다루고 있기에 우리의 악기인 장구모양의 열쇠고리를 주었다. 이게 뭐냐고 물으면서 한국의 장단도 알려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제일 쉬운 ‘덩기덕 쿵더러러러’로 시작되는 장단을 가르쳐 주었다.
저밀은 어렵다고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봉고를 두드려 가며 몇 번이고 덩기덕 쿵더러러러를 연습했다. 민간외교관 구미리내의 런던 국악 외교 이상무. <계속〉
[구미리내의 세계 배낭여행기 유럽, 그 웅대한 역사를 따라] 3 대학의 도시 옥스퍼드
여경 도움으로 겨우 버스 탑승
민박집 교사부부 친절에 “황송”
발행일1993-11-14 [제1880호,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