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신자라도 죽음에 임박하면 좀 더 살기 위해 몸부림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더욱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암선고를 받았다면 이를 숨기지 말고 알려줘 죽음을 준비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체험을 하고 기쁨 안에서 임종하게 됩니다”
근 50여 년을 임종봉사자로서 살아오고 있는 박정의(서울 혜화동 본당·75세)할머니.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북간도에서 자란 박정의 할머니가 임종하는 자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결혼 후 해주에서 살면서부터였다.
5대째 가톨릭 신앙을 지켜오던 박씨가 외교인에게 시집을 간 후, 굿을 하는 등 3년째 냉담을 하던 중 어느 날 신앙을 저버린 죄책감으로 소복단장을 하고 자살하기 위해 벼랑 끝에 섰을 때 그녀는 하느님 체험을 했다.
“그 후 주님께서 나를 해주에 있는 결핵요양원으로 인도했다”고 말하는 박정의 할머니는 “이때부터 결핵으로 죽어가는 이들이 진심으로 통회할 수 있도록 돕는 일과 이들에게 대세를 주고, 입관을 돕는 일을 해왔다”고 지난 삶을 회상한다. 당시 결핵환자는 집안식구들도 돌보지 않았다.
이때 나이가 27세였다는 박정의 할머니는 그 후 지금까지 임종자들과 늘 함께 살고 있다. 박정의 할머니는 “이북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공산주의자가 되어 성당활동을 못하게 했고, 공산당으로부터 심한 탄압이 시작됐을 때 나는 신앙과 남편을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이게 됐다”고 회고하면서 “이때 나는 나의 신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49년 묵주 하나를 들고 남편도 모르게 삼팔선을 넘어야 했다”고 밝혔다.
월남 후 28세부터 50세까지 메리놀, 골롬반, 베네딕도회의 선교사로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전교에 힘썼던 박정의씨는 “전교에는 임종봉사가 제일”이었다고 강조하면서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이 임박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가지 않고 꼭 대세를 주고 임종을 지켰다”고 전한다.
혜화동본당으로 이사를 온 후 25년 동안이나 연령회 일을 하고 있는 박정의 할머니는 “연령회 만큼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단체가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항상 죽은 시신을 거둘 때면 꼭 죽은 이가 성모님처럼 아름답게 보여 정성을 다하게 된다”고 말한다.
월남 후 지금껏 혼자 살고 있는 박정의 할머니는 연령회 회원들이 봉사를 갈 때는 가장 좋은 옷으로 입고 가야하고 상가집에서 주는 돈, 커피 한잔이라도 받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임종 봉사는 가장 완전한 봉사가 돼야 한다는 생각 때문.
“시신을 하도 많이 보게 되니까 죽은 얼굴만 보더라도 생전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고 털어놓는 박정의 할머니는 평온한 웃음을 지으며 “죽은 시신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신바람이 나지만 살기위해 몸부림치다 죽은 시신을 거둘 때면 속으로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를 간절히 바친다”고 덧붙였다.
또한 박정의 할머니는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과 고통을 나누는 환자는 진심으로 통회하게 되고 성사를 제대로 받아들인다”고 전하면서 “죽음을 평온하게, 기쁘게 맞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주님께 대한 깊은 사랑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일흔 다섯이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임종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지금도 발 벗고 찾아다니는 박정의 할머니. 수많은 이들이 죽기 전에 통회하지 못해 하느님 품에 안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혜화동 산동네에서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는 박정의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는 그리스도의 지고한 사랑이 물씬 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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