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초상 앞에 내가 선 것은 가톨릭 교육재단에서 실시한 교사 일본 연수단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한 금년 1월초였다.
따스한 겨울이라 스타킹도 신지 않은 반바지 차림의 일본 초등학생들이 열을 지어 오사카성을 오르고 있었다.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는 나에게 소년 유대철 성인과 일본에서 순교한 소년 루도비코가 늘 자리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소년 루도비코 이바라끼 성인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잡혀가 그곳에서 입교하고 성프란치스코 삼회에 입회하여 순교한 바오로 이바라끼, 그의 동생 성네오 이바라끼 아들 12세 소년 루도비꼬 이바라끼는 일본 26분의 성인 중 한 분이었다.
가기 전에 우리의 어린 소년 성인상이 일본에 있다는 이야길 듣고 다른 곳은 다 포기하더라도 소년 성인만큼은 만나고 돌아올 심산이었다. 우라까미 성당 둘레를 이곳저곳 뛰어다니다가 드디어 제일 뒤쪽 외진 곳에 서 있는 성인상을 발견하고 숨차게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이 기쁜 만남이여!’ 십자가를 안은 작은 모습의 성인은 이국의 나가사키 해변 강한 비바람을 맞으며 나와의 상봉을 반기는 듯 총명한 작은 모습으로 웃고 계셨다. 내 나라 내 땅에서 맘껏 뛰어놀며 공부하지 못하게 어린시절마저 빼앗아간 장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싶은 욕망이 뭉클 일어났다. 만나서 물어볼 한 마디 말과 함께.
“조선의 어린이까지 포로로 만든 이여! 그대는 무엇을 얻었는가?”
오사카성안에 이젠 한 장의 종이조각 속에 희미한 흔적으로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점점 애처로워짐은 어쩔 수 없었다. 진정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지상의 부귀영화 권력확장을 위해 일생을 버리며 타인 타민족의 가슴에 못을 박아 놓고 승리의 월계관을 만끽하는 그들도 한낱 낙엽에 불과한 것을. 지는 해 붙잡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인생인 것을! 4만명의 인력으로 3년이란 긴 세월동안 만들었다는 성, 이젠 서슬 퍼런 권력은 간 곳이 없고, 미술시간에 그려본 그의 초상화만 곳곳의 벽에 온통 도배하듯 메꾸고 있다니….
학생들이 사라진 지상의 영웅을 찾아 성안으로 오를 때, 순교한 천상의 작은 영웅을 찾아 나선 것이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