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있어 이 아침도 행복하다. 아이들의 눈동자에는 새벽을 예감하는 예지가 들어 있다. 긴 밤 세상을 덮었던 어둠을 밀어내는 첫 닭의 울음소리가 들어 있다.
몇년 전 88올림픽 때, 국민학교 1학년 셋째 수업시간이었다. 이층인 우리교실 창밖에서 우렁찬 마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서울 올림픽 개막을 위한 ○○○주자가 방금 문화방송국 앞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우리 겨레의 자랑이요….”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아이들이 일어섰다. 주자가 보이지 않는지 의자 위로, 책상 위로 올라갔다. 책도 밟고 공책도 밟으며 거대한 물줄기처럼 아이들은 창가에 매달렸다. 나마저도 창가에 서서 바라보았다.
“아, 우리나라에서도 올림픽을 치르는구나. 남의 나라 올림픽만 가르쳤는데, 이제 우리나라 올림픽도 가르칠 수가 있겠구나”
길가에 늘어선 사람들처럼 콧날이 찡해 왔다. 아이들과 함께 손뼉을 쳤다. 달리는 주자에게 힘을 주기 위해 목청 높여 응원을 했다.
그런데 야단이 났다. 다음 수업시간이 시작되었는데도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노느라 종소리도 못 들었는가 싶어 찾으러 나갔다. 그런데 아이들이 줄까지 서서 운동장을 열심히 달리고 있지 않는가 큰 목소리로 와와 응원까지 하면서. 마침 지나가던 수녀님께서 구경하고 계시다가 웃으셨다.
“아이들이 아까부터 무엇을 들고 한명씩 달리고 있어요”
자세히 보니 설화모양으로 나뭇가지를 들고 답하고 있었다. 지난 시간에 본 성화봉송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나무를 사랑하자고 하면서 나무를 꺾은 여러분에게 그 나뭇가지는 회초리가 될 거예요”
신났던 아이들은 주저앉아 ‘아앙’ 울어 버렸다. 여럿이 울자 창가에는 수업하던 선생님과 아이들 모습이 까맣게 보였다.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막대기를 들고 달렸다.
“자, 이제는 내가 주자다. 모두들 나뭇가지를 들고 나를 따르라”
멍해 있던 아이들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따라왔다. 신나게 달렸다. 운동장은 개나리 숲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