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성당에서 군종병은 아주 중요한 존재이다. 본당 신부와 함께 생활하면서 본당에 관계되는 모든 업무를 수행하는데 주로 군복무중인 신학생이 맡아 하는 곳이 많다. 흔히들 생각하기에 군인이 부대에서 생활하지 않고 성당에서 영외생활을 하기 때문에 편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군종병은 우선 사무장으로서 본당 사무에 관계되는 모든 일을 책임지고 있다. 그리고 제의방 수녀로서 전례준비 및 정리를 도맡아 해야 하며, 또한 성당 청소와 관리, 경비도 담당하고 있다. 그러고 아주 힘들고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가 식복사이다. 전방지역 군인 성당에서는 군종신부와 신학생이 함께 밥해 먹으며 사는 곳이 많은데 이런 경우엔 주방일 역시 군종병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군종병은 밥 짓는 것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반찬에 몇 가지 국 정도는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전방에서 신학생과 함께 생활할 때의 에피소드 한 가지. 아침미사 후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주방에서 신학생이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예부터 친정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고 했는데 주방과 화장실이 나란히 붙어있는 것이 화근이었다. 한창 칼질을 하던 신학생이 주방을 나와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큰 볼일 보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뿔사, 변기 물내려가는 소리는 들었는데 손 씻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주방에선 다시 칼질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한참 후 식사상이 차려졌다. 꺼림칙해서 물어보니 손을 씻지 않았단다. 볼일을 보고서 손도 씻지 않고 음식을 만들다니.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것을. 수저를 뜰 때마다 화장실 생각이 먼저 났으며, 그후론 식사때마다 손을 씻었는지 여부를 확인했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군종병은 군인성당 내에서 일인 다역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휴일 없이 수고하고 있다. 사회에서 그렇게 일을 시켰더라면 진작 불법, 악덕 고용주로 고발되었음직 하다. 그런데도 우리네 착한 군종병들은 한마디 투정 없이 맡은바 임무를 수행하며 성실한 군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신부로서 좋은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고, 기도하고 사목하는 모습보다는 술 마시고 놀기 좋아하는 모습이라든가, 사소한 잘못에 화를 내고 꾸중함으로써 고생하는 군종병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더 많아 참으로 미안하다.
한마디 덧불인다면, “군종병 여러분! 군에서 군종신부와 군종병은 바늘과 실로서, 군종병 없는 군종신부는 김빠진 맥주요, 앙꼬없는 찐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