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1시간30분가량 바다로 나가면 인구 8백90명의 작은 섬 선재도에 닿는다. 여객선에서 작은 통통배를 타고 선착장에 내려 이 섬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미니버스로 15분가량 가면 바닷가 언덕 빨간 벽돌의 아담한 선재공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게 힘들게 찾아간 외지 공소에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굳세게 신앙을 지키고, 전파하는데 온 힘을 다하는 공소회장 양선경(야고보·56세)씨와 부인 이춘매(요세피나·52세)씨가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맞아주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는 우리 신자들이 있기에 살맛이 난다”고 입을 모으는 이들 부부는 “그리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한 때는 하느님을 저버린 적도 있었지만 그분의 사랑이 우리들과 이 작은 섬에 함께 한다는 것을 항시도 잊지 않고 살아왔다”며 검게 그을린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머금었다.
선재공소는 1958년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후, l965년 폐쇄되기에 이르렀고 1984년 양선경씨 집에서 다시 시작되기까지 근 20여 년 동안 교회로부터 버려져 있었다.
다 쓰러진 공소터를 보며 애를 태우던 이들 부부에 의해 선재공소가 다시금 활기를 찾고, 급기야 91년 1월15일 새로운 부지에 빨간 벽돌로 지은 공소를 마련, 준공식을 거행했다.
양 회장 부부가 선재공소를 세우기까지에는 뼈를 깎는 아픔과 눈물이 있었다. 선재도에서 태어나 결혼을 한 이들 부부는 충남 당진으로 삶의 터를 옮기고 양씨는 트럭 운전수로 열심히 일하던 중 피가 말라가는 병을 얻어 고생한 보람도 없이 맨손으로 다시 고향 선재도로 낙향하게 됐다.
그 후 양씨 부부는 피나는 노력으로 자수성가 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 특히 부인 이춘매씨는 어려서부터 싹틔워 왔던 신앙을 근 20년 동안 냉담하느라 항시 마음이 무거웠다고 전한다. 양선경씨는 이때까지도 세례를 받지 않은 상태.
“남편의 집안이 대대로 무당 집안이라 시집을 올 때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생활을 못할 것 같아 많이 망설였다”고 토로하는 이춘매씨는 “어렵게 사는 가운데도 다 쓰러져가는 공소 건물 앞을 지날 때면 가슴이 쓰렸다”고 회고한다.
이들 부부가 신앙을 다시 찾게 된 데에는 양씨의 친구인 김오득(뿌로따시오·서울 불광동본당·57세)씨의 영향이 컸다. 김씨가 서울교구 조순창 신부와 함께 선재도를 방문, 이들 부부와 나숙자(안나)씨 등 3명의 신자와 함께 다 쓰러진 공소에서 미사를 드린 게 계기가 돼 20년 동안 꺼진 신앙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게 됐다.
이날을 회고 하면서 이춘매씨는 “먼지투성이의 공소를 청소하면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미사를 드렸던 그날 너무너무 슬퍼 밤새 펑펑 울었다”고 말하면서 “그날 밤 남편과 함께 꼭 쓰러진 공소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고 굳센 약속을 했다”고 토로했다.
“우리가 마음을 다져먹고 공소를 살리고자 열심하니까 하느님께서 여러모로 도와주셨다”고 전하는 이들 부부는 “공소부활을 막 시작한 84년 당시 선재도에 부임해온 보건소장 김학년(수산나)씨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학년씨는 보건소장으로 주일학교 운영과 신자 교육에 헌신적으로 일했으며, 공소 재건을 위해 임기를 3번씩이나 연기해 가며 아이들과 오지인 섬에서 살았다고 한다.
선재공소 신자들은 한결같이 양 회장 부부의 희생어린 신앙심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하도 힘들어 주일 공소예절 때 강론을 하다말고 서로 끌어안고 울기도 여러 번 했다”고 전하는 공소 신자들은 “양 회장 부부가 지금의 선재공소가 있기까지 쏟은 공로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처절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양선경씨는 “공소를 다 짓고 4백여 명의 축하객들과 함께 감사미사를 드릴 때 그 기쁨이란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히고 “선재공소가 있기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먼 길에서도 공소예절에 참례하기 위해 공소를 찾는 할머니들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겸손해 했다.
어엿한 공동체로 변모하기까지 말 못할 어려움이 많았지만 석양이 지는 공소건물 앞에서 웃음 짓는 이들 부부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깊은 신앙의 골이 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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