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한 일이지만 학교다닐 때 시험공부를 하면서는 밤을 샌 기억이 없는데 신부가 되어 고스톱을 하면서는 밤을 샌 적이 여러 번 있다. 아마 그때 밤을 새워 공부를 했었더라면 지금쯤은 박사신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으며, 또 그렇게 맑은 정신으로 밤을 새워 성체조배를 했었더라면 성인신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스톱으로 밤을 샐 때마다 하느님께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지만 이것도 당신 영광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시고 눈감아 주시길 청하면서 하고는 한다.
변명같지만 군종신부의 사목활동에 있어서 술과 고스톱은 뛰어난 협조자 노릇을 한다. 전교나 냉담자 회두, 신자화합 등에 있어서 술과 고스톱만큼 좋은 것도 드문듯하다. 다행히 술과 고스톱을 좋아해서인지 그 사이 고급장교들 세례도 몇 명 시키고 냉담자들을 본당 일꾼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고스톱하니까 생각나는 일이 있다. 군단 성당에서 근무할 때다. 가깝게 지내던 중대장이 있었는데 사관학교 생도 때 선배가 따라오라고 해서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갔더니 이마에 물을 붓고 예식을 거행하는데 세례식이더란다. 교리는 한 번도 받지 않고 졸지에 선배 덕에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그날 이후로 냉담하게 되었단다. 아이가 벌써 둘이니 혼인 조당중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교회에서 혼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으니 탓할 수도 없다. 세례명을 기억하고 있는 것만도 고맙다고 할 수 밖에.
어느 날 “바오로씨, 당신 조당걸린 거 빨리 풀어야지”라고 했는데, 그가 깜짝 놀라면서 한다는 소리가 “예?, 소당이요? 저 고스톱 안 쳤는데요”하는 것이었다. 이건 실제상황이다. 조당이나 소당이나 사촌간이니 헷갈릴 수도 있었겠지. 뒤에 그 부부는 조당을 풀고 열심한 신앙생활과 함께 본당 내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먼저 본당을 떠나왔다.
군인들은 여건상 체계적인 교리공부를 통해 세례를 준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쉽게 세례를 받는 이들이 많으며, 쉽게 받은 만큼 쉽게 냉담을 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성당에 미사참례 하러 오는 것보다 미사 후 군종신부와 마주앙 한잔하고 고스톱 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그들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과, 성당일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봉사하고, 신자라는 자부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다. 그런 그들의 마음 안에 조금씩 조금씩 하느님의 마음을 심어 넣어 주는 것이 군종신부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여러분, 소당은 걸고, 조당은 빨리 풉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