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의 봄은 개나리가 피어나면서 시작된다. 높은 지대라서 바람이 쌀쌀하고 새벽같이 성당으로 모여와야 하는 아랫집 수녀님들은 더욱 스웨터를 벗을 날이 없는데도 노란 개나리는 뒷동산 어귀에서 정원에서 울타리처럼 늘어져 샛노랗게 파드득 피어난다.
가지를 꺾어 안내실에 꽂기도 하고 개나리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면 진달래와 목련이 봉오리를 수줍게 터뜨린다. 백목련의 우아한 자태는 며칠이 안 되어 떨어질 줄 예감하고 있기에 자주 바라보며 고고한 자태에 감탄한다. 며칠 피지도 못하고 후드득 떨어지는 목련을 피우기까지 겨울 내내 바람을 감싸 안고 인내를 배운 사랑이 숭고하다.
목련이 지면서 정문 옆에 어사화가 핀다. 늘어진 벚나무의 꽃줄기가 암행어사들이 꽂는 나뭇가지와 비슷하여 붙인 이름이다. 레이스를 두른 연분홍 벚꽃이 지면 라일락 봉오리에 진한 향기가 터지고 뒷동산에 복숭아꽃이 핀다. 동산을 덮은 진분홍 복숭아꽃이 화려하고 달빛을 닮은 배꽃이 청초하다. 그늘진 곳에서는 제비꽃이 보라색 밭을 이루고 성모상 옆에는 묵주알처럼 작고 흰 꽃이 방울방울 피어난다.
느티나무가 푸름으로 짙어갈 때 대추나무가 제일 늦게 잎을 틔우면 주일 오후 버찌를 따먹는 웃음소리가 맑게 울려퍼진다. 채송화와 봉숭아가 피면서 여름의 푸른 그늘이 본격적으로 영역을 넓혀간다.
접시꽃, 분꽃, 나팔꽃, 장미, 잔디꽃은 여름 내내 피고 지곤 한다. 그 중 접시꽃의 소박함은 시골밥상 앞에 앉은 만큼 마음을 풍부하게 한다. 이른 아침 나팔을 불어대는 싱싱함으로 반겨주는 나팔꽃이 상쾌하다. 저녁나절에 피어나는 분꽃과 함께 동요 한 곡을 불러본다. 학교가 방학을 할 때 쯤 하얀 종꽃이 피는데 우리는 종꽃을 방학꽃이라 부른다. 그렇게 여름이 쑥쑥 자라난다.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이제 꽃은 다 지고 대추도 배도 모과도 후박열매도 따가고, 잎마저 가을빛에 물들어 죽어갈 준비를 한다. 바람 부는 정원이 휑휑그렁한 만큼 죽어가는 단풍잎 은행잎 갈잎이 화려하다.
가을벌레들이 또랑또랑 울어댄다. 바람폭에 매달리던 단풍잎이 한잎 두잎 떨어진다. 떨어진 단풍잎 위로 별이 쏟아진다. 자연은 진정 본래의 생명대로 살 줄 알고 죽을 줄 아는 생명이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전옥희 소녀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부터는 동정성모회 온정선 수녀님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