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서 버스를 타고 한나절 일을 마치고 올라치면 공해가 온몸에 한꺼풀 덧씌워진냥 무겁고 답답함을 느낄 때가많다. 특히 막히는 버스 안에서 창문을 열면 달아오른 아스팔트의 더운 기운과 매운 연기가 몰려와 오염된 환경의 실체를 들이마시게 해 준다.
그런중에도 승객을 태우고 하루종일 버스를 모는 기사님과 한 길가에서 열심히 행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목이 아프고 힘이 들까 하는 생각에 우리 스스로 잃어버린 자연의 조건을 꼭 되찾아야 한다는 새로운 각성을 일으키게 된다.
비단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가난한 산동네의 공기는 연탄가스와 악취로 숨쉬기가 불쾌한건 마찬가지이다. 남들이 쓰고 남은 자투리 땅구석에 딛고 서서 잡초처럼 우거져 숨어사는 그들에게는 다닥다닥 붙은 방일지언정 몸 누일 자리만으로도 다행스럽다. 방에 미어터지라고 붙어서 새우잠을 자거나 너무 좁아 번갈아 교대로 누워 잔다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 좁은 내 방이 호사스럽게만 느껴진다.
그들은 세속에 굼뜨고 약삭빠르지 못해서인지 열심히 일해도 사는게 가파르고 고달파 늘 가난이 칭칭 감겨져 벗어나질 못한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똑같이 창조된 인간이건만 생활고와 인권침해 부당한 대우와 억울하게 갇혀있는 사람들의 고통이 하느님 앞에서 부끄럽고 창피스럽다. 분명 혈관에 흐르는 피는 같은 색깔일텐데 사는 모습이 천지차이로 불공평함으로 환경오염도 오염이지만 인간성에 대한 오염을 더욱 심각하게 느끼게 한다.
그러나 참생명을 깨달은 이들의 해결노력은 지금은 오염을 고집하지 못하게 산적한 문제들을 조용히 풀어나간다. 유기농산물을 재배하고 폐기물을 정화하며 재활용과 절약, 절식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한 몫을 한다. 불구노인을 모시고 심장병 어린이를 살리고 소녀가장을 도우며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 치료해 주고있다.
100% 건강한 사회는 없다지만 우리의 건강 회복제는 깨어있는 사람의 나눔 정신이다. 그 효과는 사랑을 회복하고 사랑의 회복은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 본래의 아름답고 선한 모습을 되찾게 해준다. 그러나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아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나 너 우리 인류가 무엇보다 사랑이신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 참 앎을 우선으로 할 때 그 사랑을 회복할 주 알고 제대로 닮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