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할 것인지에 연일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은 10월 18일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교황의 방북을 요청했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교황은 방북 성사 가능성을 언급하며 화답했다. 아직 북한이 교황청에 공식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고 우여곡절이 없을 수는 없지만 교황이 실제로 북한을 찾는다면 평화의 가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할 것만은 분명하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이은형 신부로부터 교황 방북에 대한 기대를 들었다.
냉전으로 전 세계가 양분돼 극심한 대립을 이루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로 인해 미국과 소련 간의 일촉즉발의 위기가 고조돼 3차 세계대전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웠습니다. 당시 성 요한 23세 교황은 평화의 중재자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미국과 소련을 설득했고, 가까스로 세계대전의 큰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던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목격했던 교황은 전쟁 없는 세상을 촉구하며, 이듬해인 1963년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반포했습니다.
올해는 「지상의 평화」가 반포된 지 5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18년 한반도는 과거 생각지도 못했던 대변화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냉전지역, 동북아의 화약고라고 불리던 한반도에 평화의 훈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과 북의 인적교류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연이어 개최된 고위급 회담과 장성급 회담들 그리고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과 평양에서 3차례 연이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더 나아가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후속 만남과 더불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예정돼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18일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한 뒤 최종태 작가의 성모 마리아상(왼쪽)을 선물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대통령에게 청동 올리브 가지를 선물했다. 청와대 제공
짧은 시간 이뤄진 이 변화가 현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이는 시대적 변화라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고, 하느님의 선물 내지는 기적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에 더해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이 바티칸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면담했고, 대통령의 북한 방문 요청에 교황은 아주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우리 언론에서는 교황의 방북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만일 교황 방북이 성사된다면 이는 한반도 평화구축에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교황의 방북과 관련한 여러 가지 논란들이 있습니다. 북한의 신앙공동체가 정부의 통제를 강하게 받는 불완전한 공동체라는 것과 북한 인권문제를 도외시한 방북은 자칫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교황의 방북이 사목적 이유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인 평화를 이루고 확산시키는 평화의 사도로서의 방북이라면 신앙공동체와 관련된 논란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교황의 방북을 통해 불완전한 신앙공동체가 완전한 모습으로 성장, 발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70여 년 이상을 대결과 갈등의 냉전구도 속에서 폐쇄적인 국가 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강력한 통제사회를 형성하면서 그 안에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이 자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바탕으로 정상사회로 들어오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상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가운데 사회발전과 더불어 인권 역시도 자연스럽게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현재 우리 기준으로 북한의 인권을 요구한다면 이는 마치 갓난아이에게 뛰어오라고 소리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교황의 방북은 북한이 정상국가로 거듭나는 데 큰 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제 다시 공은 북한에게 넘어왔습니다. 북한이 정식 초청장을 보내면 교황청에서는 그 타당성을 검토할 것입니다. 교황 방북이 성사될지에 대한 전망이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교황 방북이 꼭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핵위협으로 가득했던 평양에서 핵 없는 세상을 촉구하시며, 냉전으로 인한 불안전한 화약고에서 불어오는 평화의 바람이 분쟁으로 얼룩진 온 세상에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는 교황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또한 오랜 분단으로 인해 우리 마음과 또 우리 사회 안에 자리한 온갖 상처와 폐단들을 깨끗이 씻어내고, 남과 북이 평화를 기반으로 상생 발전해 통일의 시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분단의 장소인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남과 북 신자들이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시간도 기대해 봅니다.
이 변화의 시간에 우리의 기도와 관심이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평화를 위한 간절한 기도가 오늘의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평화의 과정에서 여러 난관들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우리 기도의 힘을 더욱 간절히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와 관심이 나 혼자가 아닌 이웃과 함께하는, 더 나아가 인근 국가들을 비롯한 전 세계 신앙인들이 함께 연대하는 기도가 될 때, 그 기도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평화가 너희와 함께!”였습니다. 그 평화의 아름다운 선포가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한반도 곳곳에 아니 세상 모든 곳에 울려퍼질 수 있도록 행복한 꿈을 함께 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은형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