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신부로 부임한 첫임지는 강원도 산골 전방지역이었다. 부대들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다 보니 사목활동의 주무대는 본당보다는 부대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러다보니 미사도 본당에서보다 부대에서 드리는 때가 더 많았다. 미사도구를 챙겨 부대를 돌다보면 잊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가끔씩 생기게 되는데 그 중 한가지다.
그해 가을이 다간 주일 아침, 지프차에 미사가방과 간식을 싣고 군종병인 신학생과 함께 산을 넘어 부대를 향했다. 첫 부대는 신교대, 군에 갓 들어온 훈련병들을 위한 미사이다. 성가연습을 주도하고 있는데 제대를 차리고 있던 신학생이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부른다. “신부님, 제병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제물이 없는 제사를 드릴수도 없고 이제 와서 어쩌랴,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세례받은 신자들보다 군에 와서 처음으로 미사 구경 온 훈련병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오늘은 저와 함께 ‘공소예절’이란 것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훈련 마치고 자대 가서 주일날 신부가 오지않을 땐 신자들끼리 모여 공소예절을 꼭 하도록 하세요.” 그리고는 신부가 주도하는 공소예절을 바쳤다. 군종신부에게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리라.
이렇듯 군종신부의 미사봉헌지는 주로 부대이며, 그것도 부대 안에 성당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식당이나 내무반, 사무실 등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며 운이 좋은 날은 개신교회 건물을 빌려 쓰기도 한다. 그래도 미사는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엄숙하고 진지하다. 몇 달 만에 보게 되는 군종신부를 찾아 모여드는 병사들이나 그들을 찾아가는 신부나 모두 코끝이 찡한 감동 속에 미사가 진행된다. 비록 많지 않은 숫자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신부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군종신부를 그 자리에 굳게 서있게 한다.
한편 미사는 본당에서도 거행된다. 주로 간부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미사인데 신자 수가 적은 탓도 있지만 무엇이 그리 바쁜지 참석자들이 많지 않다. 평균 두세명, 많아도 다섯명을 넘기가 어렵다. 가끔은 참석자가 없어 신학생과 둘이서만 미사를 드릴 때도 있는데 이럴 때면 미사는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가 아니라 “주께서 신학생과 함께”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 여러분이 본당에 없는 것이다. 이런 날이면 미사지향도 자연스레 정해진다. “주님, 내일 미사에는 신자 몇 명만 보내주십시오”한마디 덧붙인다면, 함께 할 신자들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 서있는 본당 신부의 모습은 참 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