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김영삼 대통령의 모습이 한국판 모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신한국 건설에 앞장서서 부정부패 척결이란 지팡이를 들고 막막한 부조리의 바다를 치고있는 모습. 드디어 불가능해 보였던 썩은 물이 갈라지고 살길이 열렸다.
그러나 누가 신뢰와 용기를 갖고 먼저 그 땅에 발을 디딜 것인가. 아니면 황금만능의 노예시절이 그리워 어떻게든 되돌아가자고 부추길 것인가.
그동안 우리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왔다. 1987년 한 해만 해도 열번이 넘게 저녁마다 수녀원을 나와 명동성당을 비롯한 시내 성당에 모여 민주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였다.
수녀원 자체에서도 목요일 성시간 때마다 민주화를 염원했고 지금도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를 바치고 있다. 교구별로 미사는 물론 철야기도와 시국강연회가 열렸으며 사제들의 단식투쟁도 잊지못할 것이다. 최루탄의 매운 연기를 손수건으로 막으며 시위군중속에서 꼼짝않고 기도했던 우리를 하느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으니 더욱 감사롭기만 하다.
이런 말이 들린다. 반독재 투쟁에 앞서 온 가톨릭교회가 공격할 대상을 잃고 새로운 진로 모색에 고심을 하고 있다고.
우리의 진로는 처음부터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투쟁이라기보다 참다운 인간의 존엄성으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정의를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역사와 사회를 무시한채 신비적인 신앙에 머물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사회정의구현은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며 먼저 실천해야 할 하느님나라의 가치였다. 어느 시대에 살고 있건간에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웃에게 참되게 대하는 자세,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이웃을 대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지 알수 없다. 노동자들의 외침, 감옥에 갇힌 이들의 고통, 억압당하는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며 함께 걸어가야 한다.
모세는 백성들을 위해 늘 간절하게 기도드린다. 이 땅에 창조의 질서가 회복되고 하느님의 정의가 꽃피기를 바라는 모세의 기도에 나의 기도를 합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