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영복을 누리고 계실 신부님, 성모성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들려온 신부님의 부고소식은 너무도 큰 충격과 비애로 가슴이 메어지는 듯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언젠가는 훌훌 털고 혼자서 떠나가실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귀천하시다니, 그 당장 슬픔과 서러움이 앞서기만 했습니다. 서둘러 달려간 명동 지하성당 내 유리관 속에서 신부님은 잔잔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평안하게 주무시는 듯, 금방 깨어나겠다는 약속처럼 구두를 신은 채 잠결에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는 듯 했습니다. 아니 연도 도중에는 신부님이 우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시며 “누구 왔니?” “너도 왔느냐?”하시며 한 명 한 명 반기고 있는 듯 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수도의 길목에서 신부님과의 만남은 수녀원에 상주하시던 4년 동안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순수한 하느님 사랑을 나누어 주심으로써 빛깔 짙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신산스런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성큼성큼 사제의 길을 걸어가시는 모습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목자로서의 노력이 한 치의 모자람이 없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남모르는 고초에도 불구하고 애정과 신뢰로 사목상담이 한국교회 안에 뿌리내리길 숙원하셨던 신부님은 늘 공부하는 사제, 작은 만남도 소중히 여기는 사제로 우리의 가슴속에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생래적으로 다정다감하셨던 신부님, 한결같이 쏟아주시는 사랑이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린이처럼 천진스럽고 솔직함은 내면에 받아들인 하늘나라의 모습 같아 부러웠습니다. 수녀원 언덕길, 혹은 정원 한쪽 켠에서 씨익 미소 지으며 나타나 ME가족의 인사로 손가락을 흔들어 주시던 신부님의 모습이 이제는 꿈같은 지난날이 되었습니다. 주교관으로 떠나신 후 찾아가는 소비녀들마다 반색으로 맞으시고 다녀간다는 작은 메모지 한 장 안 버리고 곁에 두었던 신부님은 바로 하느님 사랑의 선물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고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이제 순백의 영혼으로 마냥 행복하실 신부님, 우리 앞에도 이 너머의 세상이 열려 함께 만날 날을 기다리며 더욱 큰 사랑의 전구를 청합니다.
수도의 길을 항구하게 걸어가는 하느님의 영원한 소비녀이기를… 꼭 빌어주십시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오 로베르따 수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서울 성가 소비녀회 전옥희(사무엘)수녀님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