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고 바짝 마른 어린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말하였다. “신부님, 제 가슴 속에는 악마가 사나 봐요. 다시는 신경질을 부리지 않고 동생도 때려주지 않겠다고 엄마께 수십 번 약속드렸어요. 그렇지만 하루도 못가서 그 약속을 어긴답니다.”
며칠 뒤 그 아이의 어머니 되는 사람으로부터 밤중에 전화가 왔다. 그 아이가 맹장염으로 수술을 하였단다. “신부님, 아랫동네에서 음악소리가 나올 때가 넘었는데 아직도 안 나오네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잘못되어서는 안 되는데… 신부님, 기도 좀 부탁드립니다”
어느 선배 신부님께서 “신부는 기생이다. 신부는 걸레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이거 세상에 방귀 나오라고 가야금 뜯는 기생도 있고 방귀 낄 자리 닦는 걸레도 있나.”
다음날 아침, 하얀 병실에 누워 있던 그 아이는 전날보다 더 심각한 표정으로 “신부님, 악마가 가슴에서 아랫녘으로 내려갔나 봐요. 신부님 제 손을 잡고 기도해주세요. 빨리 나아서 친구들과 놀고도 싶고, 지난봄에 갔던 칠갑산 아흔아홉 계곡에도 가고 싶어요.” “그러자구나. 마귀 떼는 기도를 구마기도라고 한단다. 그런데 어쩌지 구마기도는 아무나 할 수 없고 주교님 허락을 받아야 하거든(교회법 제1172조). 주교님께서는 내가 신부가 될 때 많은 권한을 주셨지만 구마식 거행권은 안주셨거든.” “신부님, 그러면 저는 어떻게 되나요. 악마는 영영 제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건가요?”
그 후로도 나이에 비하여 자기 성찰이 뛰어난 그 아이는 자신의 내면이 선과 악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종종 말하곤 하였다. 생의 실상은 하늘에도 머물지 못하고 땅에도 머물지 못하며 갈등을 겪는다. 마치도 호렙산 위에 서 있는 엘리야와도 같고, 호수 한복판에서 풍랑을 겪는 제자들과도 같다. 생은 끊임없이 바람 휘말리고 지진으로 갈라지고 뜨거운 불길에 싸인다. 사제인 나는 그 누구보다도 하늘과 땅의 간극을 더 심하게 느끼며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하느님께서는 선과 악을 모두 나에게 허락하심으로써 사제인 내가 바로 죄인이라는 성찰에 이르도록 하신다.
베드로의 일생이 그러했고 특히 죽음을 상징하는 물에 빠질 때 비로소 자신의 실상과 주님의 실상을 제대로 깨닫고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사제인 나는 선과 악에 대하여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나는 자신의 모순 속에서 한 인간이 겪는 고독을 느끼고, 그 고독 속에 떠오르는 하느님을 만나 뵈어야 할 사람이다. 자신의 모순을 교만한 침묵이나 교만한 지식으로 위장하거나 감소시켜서는 안 된다. 나는 지도자이기 전에 다른 이와 똑같은 구도자로서 뼈아프게 자기 내면을 파내야 하는 행보를 해야 할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