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품 팔러 안 가실래유. 일당 만이천원인디유”
칠갑산을 향해 바다 물결처럼 길게 굽이치는 구기자 밭이랑에 들어섰다. 땅콩알보다도 작지만 새빨갛게 잘 익어 반들거리는 구기자 열매는 가히 보석처럼 보였다. 빛깔에 매료되어 얼마를 땄는지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저려왔다. “아이구 신부님, 그렇게 따가지구는 일당 못 받어유. 하루에 다섯근을 따셔야 해유. 그 세수대야로 하나 가득 따야 되유” 구기자도 못 따면서 허리만 자주 펴는 나를 향해 주인은 골패인 얼굴로 웃었다. “성당에서 신부님은 높으신 양반이라 가까이 하기도 어려웠는디, 제 밭에 오셔서 쩔쩔 매시는 거 보니깨 쬐금은 고소하네유. 저는 사실 성경도 교리도 잘 몰라유. 그래서 주일날 성당만 가면 기가 팍 죽거든유. 허지만 이 구기자에 대해서만큼은 박사유”
“언젠가 신부님께서 포도나무 비유에 대한 강론을 하시대유. 잘 생각은 안 나지만 그때 신부님께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머물러 사는 것’이라구 하셨지유. 이 구기자는유 거름을 엄청나게 먹어유. 그리고 다른 농작물보다도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가야해유. 그러나 거름을 주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기자나무곁에 머무는 것이어유. 구기자밭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은 수선만 떨지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는 구기자를 돌볼 수가 없거든유. 아마 자식한테도 구기자와 함께 많이 머물면서 손길을 주지 못할 거예유. 저는 이 농사를 지면서 천주께서도 저희와 함께 항상 머무시면서 이렇게 매일 수 없이 우리에게 손길을 주실 거라구 생각해유. 머물러야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구기자처럼 지같이 무식한 신자도 천주님 안에 머물면 천당 가겼지유”
“오늘 품삯을 너무 많이 받아갑니다” 사지는 나른했지만 정신이 맑았다. 사실은 내가 먼저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내 안에 머무신다. 하느님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려하고 전하려고 고심하고 애쓰면서도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깊이 느끼지 못하며 살아간다. 사제인 나의 큰 죄는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리스도로 행동하려고만 하지 그리스도 안에 머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의 본질은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이다. 하느님 안에 머물 때 성령께서 나의 몸을 움직이게 하실 것이다. 무섭게도 나는 성령과 상관없이 하느님 안에 머물지 않으면서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가야파’처럼 공적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