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아꼬 깊은 침묵 세기를 타고 흘러
침묵의 영혼 하느님과 일치되어 세상을 품어 간다네
듣기 위하여 비우는 소리와, 진리의 말씀앞에 우뚝 선 빈말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구나 깊은 침묵의 영혼 안에서-
천지를 혼란케하고 인간 심장을 텅비게 하는
소리들이 허무하게 사라지는구나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창조하시고 인간을 사랑으로 달구어주신
말씀, 그 말씀을 모시려 하는 영혼이여
하느님 갈망하는 이에게 흘러오는 침묵의 구름타고
비움의 골짜기 건너 순결한 마음의 강에서
님의 모습 뵙는 행복 가질지어다.
이 글은 지난 분도축일을 지내면서 고성에 있는 우리 기도 공동체와 올리베따노 분도수도원에서 ‘침묵’이라는 주제로 가진 세미나 뒤에 나눔을 통해 참므로 우리가 갈망하는 하느님과의 일치는 먼저 침묵의 자세가 수반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수도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큰 업이 기도라면 이 기도를 위해 따라야 하는 것이 침묵의 자세이다. 참으로 침묵할때 나를 알 수 있으며, 또 너를 잘 알 수 있지 때문이다.
이 앎은 육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아는 것이 아니라 비움의 상태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는 영신의 눈을 가지게 되며 있는 그대로의 다른 이의 표현을 들어 줄수 있는 영신의 귀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보고, 듣는 것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서 수도자인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 가고 있다. 특히 영적인 것을 잃어가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시간을 침묵과 기도속에 보내는 데에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침묵의 상태를 위해 TV보는 것, 유익하지 않은 책을 보는 것 또 불필요한 말들을 지껄이는데 있어서 우리 자신을 절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때 바쁜 소임에서 지내는 우리가 그나마 작은 침묵의 공간을 만들어 가고 기도로써 하느님과 일치되는 기쁨을 가질 수 있으리라.
참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다면 거기에는 침묵의 공간이 없기에 그러리라. 침묵의 공간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린 용서하고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리라. 수도자로 산다함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일보다도 하느님과 일치하여 그 하느님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 길이 바로 침묵의 상태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크게 또 더 뜨겁게 하느님을 만나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수도자인 우리는 많은 성인들께서 가르쳐 주셨고 또 분도 성인께서도 강조하셨던 침묵의 정신으로 순간순간을 살아야 하는 침묵의 후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