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7일 바라나시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10시. 어수선한 도시의 아침에 밀려 나는 혼란을 거듭 해야 했다.
바라나시는 원래 북쪽의 바루나강과 남쪽의 아시강 사이에 도시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또한 갠지스강도 영어명이며 이 성스러운 강은 강가(ganga)라고 부르고 있다.
힌두신앙에 의하면 강가의 성스러운 물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가 씻기고 여기에서 죽어 재를 강으로 흘려보내면 윤회로부터의 해탈을 얻는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힌두교도로서 최고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가는 상상외로 더러운 곳이었다. 나조차도 손가락 하나 담그기가 두려울 정도로. 그러나 힌두교인들은 그러한 것들은 단지 관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강가를 그 자체로만 여기는 모습이 자못 부럽기도 했다.
바라나시는 강가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도시이다. 모든 작은 길은 강변으로 통하고 있고 복잡한 골목길을 헤맨다 해도 어느새 강가에 다다라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웠다. 이 도시에는 연간 1백만명 이상의 순례자가 오는데 그 중 이 강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사람의 수도 상당했다.
2월8일 눈을 뜨니 아침 7시. 강가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멋을 만끽하기는 너무 늦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이른 아침의 강가는 새로운 맛을 줄 것 같아서 대강 챙겨 입고 발길을 옮겼다.
강가에서 몇 발자국만 옮기면 볼 수 있는 마니카르니카 가트는 수많은 가트 중에서도 성지로 여겨지는 화장터이다.
몸체는 모두 타고 나무가 모자라 채 타지 못한 목 윗부분만 남은 그 시체를 보니 사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한없는 질문들이 궁금했다.
불꽃이 꺼져가는 장작더미 근처에는 굶주린 개들이 어슬렁댈 뿐 죽음을 슬퍼하는 상주는 간데없었다. 남은 재는 모두 강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지만 그들은 하늘로 올라갈 것이리라.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힌두신은 결국은 하느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2월9일. 사르나트로 가기 위해선 역 앞에서 버스를 타야했는데 버스 번호를 모르는 나는 정류장에서 무작정 지나가는 버스에다 대고 ‘사르나트’를 외쳐 시외버스를 집어타고 갔다.
사르나트는 바라나시에서 북동쪽으로 9km지점에 있는 곳으로 마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작은 도시이다. 또한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을 한 불교도의 성지이기도 하다.
우선 발길을 들여 놓은 곳은 다메크 스트파(불탑)였다. 6세기에 만들어져 일부 파손된 모습을 하고 있지만 휴지조각 하나 없는 말끔한 잔디밭이 유난히 푸르러 보인 곳이었다. 또한 이 탑 주위를 돌며 민속의상을 입은 채 예불을 올리는 티벳인들의 모습이 더욱 이색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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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리내의 인도이야기/유구한 대지 인디아를 가다] 10 바라나시에서 사르나트까지
해탈 구하는 인파 북적되는 갠지즈강
사르나트 불탑의 깨끗한 풍경 인상적
발행일1993-07-18 [제1864호,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