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달빛은 옥처럼 푸르다 못하여 시렸다. 성당 뜨락에서 뒤척이던 오동잎도 잠이 들어 만상이 고요하였다. 잠이 심연으로 빠져들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밤의 정적과 잠을 동시에 깨웠다. “저 죽을라고 약병들고 전화하는 건디유”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무슨 약 잡수시고 밥숟가락 놓으실라고 그러슈?” “살충제 농약유?” “약맛이나 빛깔로 치면 쥐약이 좋고, 확실히 황천 가는 데는 제초제 ‘말끔이’가 좋다고 하던디유” “아이구 신분님 잘도 아시내유. 오디서 그런 거 다 알아두셨대요?” “작년 대티 최씨도 제초제 먹었다가 병원 문턱도 못 넘고 죽었구유, 쥐라는 놈은 미식가인데다가 빛깔이 얼룩덜룩해야 기분이 좋아지는 놈이라 쥐약은 맛과 빛깔이 좋다는구만유” “신부님하고 얘기하니깨 참 재미있내유. 시상에 태어나서 지 얘기 꼬박 꼬박 대답해주시는 양반 츠음 만났내유” 죽음을 놓고 우리는 농담을 하고 있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전화를 하는 동안 그 여자의 목소리는 밝아져 갔다. 그 무렵 창도 밝아왔다.
얼마 후 첫 눈이 내릴 듯한 초겨울 어느 날 이름도 얼굴도 없이 매일 밤 전화만 하던 그 여자가 사제관을 찾아 왔다. 쇠장수를 하던 남편이 삼년 전 여름 어느 날 소를 팔아 농협 빚을 갚고 돌아오다가 경운기에 깔려 죽었고 그날 집에 한 마리밖에 안 남았던 소마저 칠갑산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하였다. 그 후 살길이 막막해진 그녀는 우울증에 빠졌고 해마다 남편 제사가 돌아오면 심해져 자살을 기도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을 잃던 날 숲으로 사라진 마지막의 소 한 마리를 찾으려고 산에 올라 헤매다가 겨우 소의 발자국만을 발견하였단다.
그녀에게 소는 삶의 희망이었고 ‘이상’(理想)이었다. 그녀의 우울증은 남편이라는 ‘현실’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라는 ‘이상’이 사라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칠갑산 숲 때문에 아직까지도 안타깝게 잃어버린 소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녀는 숲 여기저기서 쇠발자국만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녀에게 소가 이상이었듯이 ‘나’에게 하느님은 이상이다. 그러나 그녀가 숲에 걸려 소는 찾지 못하고 쇠발자국만 보았듯이 ‘나’(我)도 현실적 욕망의 숲에 걸려 하느님의 흔적만 느끼지 만나 뵙지는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쌓인 눈에 ‘내 발자국’(我跡)을 남기며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