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때 실학자 이중환이라는 사람이 쓴 택리지는 조선팔도에 사람이 살만한 곳이 어딘지를 전하고 있다. 충청남도 한복판에 봄볕 이란 뜻을 가진 청양(靑陽)이라는 땅이 있다. 그 청양 중심에는 일곱개의 산들이 모여 이루어진 칠갑산(七甲山)이 자리하고 있다. 택리지는 청양을 일러 장천(獐泉)이라 하였다. 장천이란 악기(惡氣)가 솟아 사람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을 말한다.
과연 청양이 장천인가! 칠갑산은 내포지방의 남쪽 경계를 이룬다. 칠갑산의 북쪽 내포 평야에는 당파싸움에서 밀려난 사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공세리 합덕 예산 등지에서 유학(儒學)에 사상적 기반을 둔 당시 정치 사회 체제가 뒤짚이고 새 시대가 오기를 기다리던 차라 서학(西學)을 반겨 천주교를 신봉했던 것이다. 그에 비하여 칠갑산 남쪽에는 조선 말기에 풍수사상과 유불ㆍ선의 혼합된 교리에 기반을 두고 서학에 대응한 동학(東學)이 일어났다. 이렇게 청양 칠갑산 북쪽에는 서학이, 남쪽에는 동학이 성하였지만 서학도 동학도 바람을 일으키지 못한 곳은 청양 칠갑산이다.
칠갑산과 그 주변에는 천지산수(天地山水)를 다스리는 신들이 우글거린다. 청양 출신 최경환 프란치스꼬 성인은 잡신이 우글거리는 청양 땅에서는 천주님을 올바르게 섬길 수 없다고 아들 최양업을 데리고 과천 수리산으로 떠나셨다.
청양에 본당이 선 지 햇수로 30년이 지난 지금 고작 백여 명의 신자가 주일미사에 참례할뿐이다. 칠갑산 창곡사 주곡사 주지 스님으로 칠갑산엔 불심이 전해지지 않는다며 떠났다. 아직도 칠갑산엔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바람이 불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 칠갑산에는 많은 신들이 우글거린다.
칠갑산 사람들은 신을 소유 차원에서 떠받들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신의 존재 차원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이들은 신에 대한 교리나 의식(전례)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신 때문에 자신들이 어느 교파에 끼거나 집단적 행동을 원하지도 않는다.
청양 칠갑산에서는 부처님이나 하느님을 소유하려할 때 실패한다. 칠갑산 사람들처럼 신들 안에서 숨쉬며 존재할 때 승도 신부도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정병조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대전교구 청양본당 주임 윤인규 신부님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