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여름날, 동네 큰 냇가에 돼지와 살림 가구들이 떠내려가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마음을 잠잠히 가라앉히고 있었다. 저녁식사 때가 되자 밥상 위에는 콩나물죽에 김치가 전부였다. 하루 이틀은 영문을 통 모르고 그냥 먹었다. 그러나 고집이 있던 내 성격이라, 삼일 째 되던 저녁식사 때 드디어 나는 벌떡 일어나 어머니를 향해 “어머니, 저는 콩나물죽 못 먹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어린 동생 셋은 숟가락을 든 채 예기치 않은 나의 반항에 놀란 토끼마냥 겁먹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으신 채 뜨거운 콩나물죽을 아주 맛있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맛있게 잡수시고 계셨다. 당장 “그래, 밥 지어 줄께”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어린 내 마음은 실망으로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지만 꾸욱 참고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렸다.
난 드디어 어머니의 한 말씀에 내가 홍수에 떠밀려 내려가는 돼지 같은 참담함을 맛보았다. “이웃들은 집 잃고 가축 잃어 죽도 제대로 못 먹는데, 우리라고 뭐가 잘나서 세끼 밥 먹겠니. 배고프면 먹고, 먹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나가거라”하시는 그 잔잔한 한 말씀에 꾸욱 눌려 참았던 울음을 드디어 터뜨렸다. 그러나 배고픈 밤을 상상하기 싫어 눈물로 범벅이 된 죽을 한 그릇 비우고 그 후 열흘 동안 계속 두말없이 매일저녁 죽을 먹어야만 했었다. 내가 거뜬히 한 그릇씩 비워도 어머니는 “잘했다” “착하다”는 한 말씀 없으셨다.
그때는 참으로 아픈 경험이었고, 야속하신 어머니로 생각되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나에게 잊힐 수 없는 교훈이 된 것이다. 늘 무엇을 할 때, 이웃을 잊어버리기가 일쑤인데 그래도 불쌍하고, 가난하고 아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깊어짐은 어머니를 통해 배운 교훈 때문이리라.
난 요즘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과잉보호하여 키우는 것을 보면서 어린 나무에 흡수 할 수 없는 많은 양의 물을 매일 자신의 취미로, 재미로, 혹은 강박관념으로 쏟는다고 생각한다. 자녀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일깨워 주면서,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애정이란 이름 아래 꼬옥 붙들고서 행여나 무엇이 부족할까 안타깝고 애타는 마음으로 하나라도 더, 더하는 풍조 속에 있다. 몸체만 커지고 마음은 여리고, 머리는 발달되고 마음은 비어가는 그런 자녀로 만드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는 아이들로 하여금 때로는 아프고 따끔하더라도 마음이 강해지고 모든 마음이 사랑으로 차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그래서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나누고, 함께 살면서 몸과 마음이 균형이 맞고 머리와 마음이 함께 커가는 가운데 참으로 성숙된 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함이 부모가 사는 길이며 또 자녀가 살아남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