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각 본당에서는 매우 분주한 모습들로 날 밤을 새우며 청소년 여름캠프를 준비하고 장소의 선정이나 기간의 선택에 있어서 경쟁적이다 싶을 만큼 신경을 쓰고 또한 많은 수고와 예산을 투자하여 여름캠프를 치른다.
이번 우리 본당의 여름캠프 주제를 ‘나 아닌 우리’로 정하였다기에 어찌 보면 진부한 표현 같고 어떻게 보면 의미심장한 것 같기도 하여 다시금 ‘우리’를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나’라고 하는 개체보다도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 안에 ‘나’와 ‘우리’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나의 것보다도 우리 것이 강한 호소력을 나타내고 또 강한 유대를 갖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집 사람’이란 표현은 너와 내가 공유하는 집사람이 아니고 ‘나의 집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한국 고유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은 모두가 그렇게 알아듣는다.
나의 아버지보다도 우리 아버지로, 나의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것으로 표현을 상습화함으로써 얼른 듣기에는 포용력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기에서 의미하는 ‘우리’는 범위가 매우 좁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인이 표현하는 ‘우리’안에는 인과관계가 뚜렷한 경우에만 수용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 대개는 이 ‘우리’에게 배제되고 있다. ‘우리집’하면 핏줄이 같은 사람만이 수용될 수 있는 곳이고 ‘우리 학교’하면 자연히 같은 출신, 같은 소속이 아닌 한 휩싸일 수 없는 곳으로 한정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한 ‘우리’ 안에 예속되어 있을 때에만 깊은 연관이 맺어질 수 있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남’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 점은 성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대부모, 우리 영세신부님, 우리 교리 수녀님, 우리 본당 우리 구역밖에 모른다. 청소년 캠프도 똑같은 현상이다. 우리 그룹, 우리 학년에 지나치게 매어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는 방법을, 자기관심을 나누는 방법을 배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방법을 익히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지만 어느 면에서 볼 때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 나와 성격이 다른 사람, 나에게 반감을 품은 사람과는 함께 사는 법을 모른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우리는 하나다’하고 노래할 날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