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철원 월정리에 있는 끊긴 철로선을 걸으면서 달리고 싶어 하는 마음은 때 아닌 소낙비를 맞듯이 갈증으로 메마른 나를 흠뻑 적신다. 끊긴 철로가 이어져 북으로 달릴 수 있다면….
그래서 단절된 우리의 형제들을 껴안고 춤추며 함께 웃을 수 있다면-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달리기를 좋아하는 나는 가까운 산을 찾을 때마다 백마가 구름 위를 달리듯 힘껏 달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남의 눈이 있고, 수도복이라는 제복이 함부로 달리는데 넓은 아량을 베풀지 않는다. 그 제약 속에서 난 남들이 보지 않을 때면 청송들이 뻗은 길 따라 산등성이를 힘껏 달려본다. 조금 달린 후 헉헉거리는 숨으로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통쾌하게 웃어본다. 달리는 것은 이렇게 재미있는데-.
난 달리는 것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의 기대치보다 훨씬 뛰어나다. 왜냐면, 어릴 때 부모님 말씀 안 듣고 야단맞을 때면 잽싸게 달려 나가 대문 앞에 서는 버릇이 있었다. 그 안전지대에 서 있을 때는 어떤 야단도 두렵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고등학교 때 어느 비오는 날 빗물로 흥건해진 복도를 지날 수 없어서 교실문 앞에서 장화를 신는 순간, 복도 반대편에서 감시 다니시던 학생과 남선생님의 “서라!”라는 고함소리에 용수철에 튕기듯 자동적으로 2층 복도에서 4층 복도로 달려 올라가 1층으로 도로 내려와 운동장을 신나게 한 바퀴 돌았던 예기치 않은 대사건도 있었다. 날쌔게 달리는 나를 잡으러 오시던 선생님께 되돌아가서 우뚝 설수 없었던 것은 야단이 무서워서였다. 마침내 선생님은 나를 붙잡는 것을 포기하셨고 그 다음날, 교문 앞에 서계시는 선생님께 다가가 아주 정중한 인사로 씽긋 웃었을 때, 눈가에 웃음 지으며 말없이 모든 것을 받아주셨던 선생님의 너그러움을 잊을 수가 없다. 어쨌든 이런 사건들로 발달된 내 달리기 실력으로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이런 나의 실력으로 이제 작고, 옹졸함에서 벗어나 크고, 너그럽게 될 수 있도록 마음의 육상선수가 되어 달리고 싶다.
매일매일 겪는 작은 갈등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뜀박질을 하면서 허허 웃으면서 달리고 싶다. 철마가 끊긴 철로가 새로이 이어져 북으로 달리고 싶듯이 나도 나, 내 것에로 단절된 인간 이해를 이어줄 성령의 힘으로 너, 우리를 더 중요시 여기는 삶에로 힘껏 박차고 나아가고 싶다. 불이해로 막혀진 사람들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 소외된 내 이웃들의 아픈 마음에도 들어가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갈라선 북의 내 형제들에게도 사랑을 나누기 위해, 그리고 하느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믿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나는 철마처럼 달리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