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만남’이란 노래를 수녀들도 좋아한다. 왜 좋아하는지 나는 모르지만 분명히 새로운 만남을 좋아하고, 또 묵은 만남을 기뻐하는 나는 만남 속에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만남을 통한 배움의 종류는 많겠으나, 나에게서 잊힐 수 없는 만남 가운데 하나는 6살 난 베드로와의 만남이었다. 아버지 잃고 공사장에서 돌 나르시던 엄마 걱정하는 눈빛으로 흐르는 코피 막으면서 “엄마 돈 있어요? 나 아파 병원가고 싶어요”라고 엄마에게 묻던 6살 난 베드로.
가까운 수녀님의 도움으로 입원시키고 보니 ‘백혈병’이었다. 내가 그 애를 병실에서 만났을 때, 여러 개의 수혈과 수액 주사침을 꽂고 있으면서도 어린이 TV프로를 보는 것이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 순간 원하는 것은 TV보면서 연출하는 아이들과 함께 힘없으나 웃어주고, 창백한 얼굴이나마 바라보면서 미소 짓는 것이었다. 어느 저녁날, 밥을 반밖에 먹지 않는 것을 발견한 내가, “왜 밥맛이 없니?”라고 물으니 대답이 없다. “그럼 이 밥상 내다 주어야겠다”라고 들고 나오려 하는데 ‘앙’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아니, 왜 그러니?”라고 물으니 “엄마 오시면 줄려고 남겨두었어요”한다. 알고 보니 그 애는 매일 저녁밥을 하루 노동 끝내고 방문하시는 엄마를 위해 남겨 두었단다. 얼마 후 그 애는 죽음을 예고했는지, 아침부터 “엄마, 오늘은 나와 함께 있어요”라고 두 손을 꼬옥 붙들고 애원하기에 그 엄마는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에 눈물을 흘리시며 그날 노동을 포기하고 아들과 함께 하셨다.
내가 수도자로써 많은 것을 욕심내고 현재의 것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단순하게 살지 못할 때 나는 그 애를 떠올린다. 내일 죽는다 해도 그것을 원망하는 말없이 또 가난을 미워하는 기색 없이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자신의 처지에서 찾던 아이. 자신의 밥 반을 남겨놓고 노동터에서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던 엄마가 함께 해주기를 원하던 아이.
그 아이는 내 마음에 별이 되어 내 자애심으로부터 이타심에로, 복잡한 따짐에서 벗어나 단순한 기쁨을 갖도록 나를 밝혀주며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분이신 예수님과 늘 함께 하기를 소망하는 내가 되도록 내 마음을 비추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