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하늘나라에 재물을 쌓는 지혜로 살다가 5월5일 선종한 서울 왕십리본당(주임 김승훈 신부) 이완순(안나)할머니.
이완순 할머니의 일생은 물질의 노예로 전락해버린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재물의 가치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데 있음’을 일깨워주는 한결같은 삶이었다.
86년간의 험난한 인생 질곡 속에 자신을 숨긴 채 가난한 이의 대모로서 삶을 마감한 이완순 할머니는 주위로부터 자신의 몫을 아는 ‘소라의 지혜’를 실천하신 분이라 칭송받고 있다.
1908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완순 할머니는 부모를 따라 함경도 원산으로 이주, 어릴 때부터 공장 직공으로 일하면서 가난한 삶을 꾸려왔다.
30살 되던 해 남편 조병각(시몬)씨와 결혼한 이완순 할머니는 남편 집안이 강우규 의사 사건과 연유돼 신혼 첫 해인 1938년 남편을 만주로 피신시켜야 하는 생이별을 체험해야만 했다.
해방을 맞아 남쪽으로 귀국한 남편 조씨는 아내를 찾아 월북했고 북에서 만난 이들 부부는 김일성 정권의 요시찰 인물로 낙인 찍혀 46년 다시 월남하게 됐다.
월남후 강원도 주문진에 자리 잡은 이완순 할머니 부부는 오징어를 잡아 서울 남대문에 공급하면서 조금씩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다.
40살 되던 해인 1947년 상경, 명동대성당에서 이도마 신부에게 ‘안나’로 영세한 이완순 할머니는 오징어 장사와 여관을 경영하면서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수녀들과 가까이 지냈다.
6.25가 터지자 서울 수복 때까지 3달 동안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면서 수녀들로부터 신앙적 삶을 배운 이완순 할머니는 폭격으로 여관이 폭사하자 현 서울 왕십리 성당터로 이사했다.
당시 미나리밭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집을 짓고 미나리 농사를 지어 팔기 시작한 이완순 할머니는 돈이 모일 때마다 서울 천호동, 성수동 등지에 땅을 사두었다.
서울 성동구 지역에 성당이 한 곳도 없었던 1959년, 이완순 할머니는 지벨라도 신부에게 “땅을 희사하면 성당을 지을 수 있겠느냐”고 물은 후 4백평 집터 중 2백평을 선뜻 내놓아 왕십리 성당을 짓게 했다.
이때 땅값으로 1백평의 셈을 받은 이 할머니는 다시 성수동에 땅을 사둬 82년 천진암 성지 개발 때 “하느님이 주신 재산을 되돌려드린다”면서 흩어져 있던 수억 원 상당의 땅을 희사했다.
이 할머니는 또한 왕십리성당이 세워지자 63년 1백50평을 희사 사제관과 유치원을 짓게 하고 84년에는 남은 50평집마저 내놓아 현 왕십리 성당 부지 4백평 전부를 교회에 봉헌했다.
가난한 사람들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이완순 할머니는 어려운 사람이면 누구나 가리지 않고 자기 집에 불러 도움을 베풀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3년 전부터 숙환으로 병석에 누워 지내던 이완순 할머니는 김승훈 주임신부에게 “매일 미사를 드리며 성당에서 살다 죽고 싶다”며 돈독한 신심을 내보이고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어려운 사람들을 계속해서 도울 수 있도록 해 달라며” 남은 전재산 1억5천만원이 든 신탁통장을 내놓고 운명했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 ‘왕십리본당 복지회’를 설립한 김승훈 신부는 5월8일 장례미사에서 “이완순 할머니는 어려운 이를 돕기 위해 살아생전에는 당신이 직접 일하셨지만 죽어서도 그 자선이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당신 몫을 교회에 맡기셨다”고 강론하고 “모든 신자들이 이완순 할머니를 귀감으로 하늘나라에 재물을 쌓는 지혜를 배우자”고 역설했다.
가난한 이의 대모로서 한 생을 마감한 이완순 할머니는 왕십리본당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잊히지 않을 자선의 어머니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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