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성숙의 계절 5월. 밖을 내다보면 달콤한 보랏빛 라일락 향기와 신록의 반짝임에 마음은 벌써 시정(詩情)에 잠긴다. “5월, 꽃으로 장식된 이 달은 젊음과 사랑과 노래로 넘치니…” 일찍이 롱펠로는 5월이란 말에서 향기가 배어 나온다고 했다.
자연의 힘은 정말로 위대하다. 그 속엔 사랑스러움과 너그러움이 있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생명을 감싸주는 부드러운 관용의 포용력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생명력이 넘치는 5월은 그 어떤 달보다 행사도 많다. 왜냐하면 우리네 삶의 원초적인 경사스런 날들이 이 달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금 어린이를, 어버이를, 가정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우리 부모, 우리 자녀, 우리 가정에 눈을 돌리면 마음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도처에 문제부모, 문제자녀, 문제가정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자고로 자녀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는다. 자녀 교육의 책임을 부모에게 묻는 것이다. 그래서 부정적인 측면에서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말을 자주 써 왔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란 말이다. 믿음을 가진 우리가 으뜸으로 여기는 주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읊조리고 있다. 하지만 자녀의 행실이 올바르지 못할 때 아버지의 이름이 빛이 나기는커녕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 되고 만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측면에서 ‘그 아버지에 그 아드님’의 삶을 철저하게 사셨다. 가장 완전하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사신 분이다. 우리가 입술로만 아버지의 이름이 빛나기를 기도했지 행실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을, 뜻을 헤아려 살아가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는 두고두고 반성할 일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을 가장 멋지게 표현한 글을 성서에서 찾는다면 그대는 어떤 부분을 선택하겠는가? 그대가 선택한 여러 성서 구절 중에 적어도 하나는 ‘탕자의 비유’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세상의 아버지는 똑똑한 자식을 더 사랑하고, 세상의 어머니는 못난 자식을 더 사랑한다고 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죄 짓고 나서 눈물 떨구는 자식을 더 사랑하신다.
꽃바람 부드러운 5월, 화사한 신록이 신선한 5월, 화목과 사랑과 젊음과 노래가 울려퍼지는 우리의 5월엘랑 우리 서로 사랑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