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인생의 풍상을 알알이 글로 엮어 시문집(詩文集) 「햇살은 푸른빛 천지에 가득하여라」를 펴낸 송숙경(요세피나)할머니.
기둥이 기울고 비가 새고 기왓장 사이에 무성한 잡초를 간직한 2백년 세월의 고가(古家)에 살고 있는 송숙경 할머니는 고가의 묵묵함을 닮은 듯 창연한 인생여정을 늘 푸른빛으로만 그리고 있다.
1915년 엄부자모의 슬하에 둘째 딸로 태어난 송숙경 할머니는 일찍이 신학문을 터득, 경성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군산 작은 초등학교에서 이 땅의 새싹들에게 개화와 민족혼을 가르쳤다.
19세기 되던 해 단재 신채호의 일가인 신기호(요셉)에게 시집 와 처음 신씨 집안 고가에 발을 디딘 송숙경 할머니는 ‘세째아씨 시집오던 날’에서 운명의 절대 앞에서/아무것도 점치지 못하는 앞날/환희도 불안도/그저 내어맡긴 자기 자신을/자신의 의지로는 어쩌지도 못하고/무력하기만 한/이 시대의 여인상으로 마치 예언이나 한 듯 자신의 운명을 점치고 있다.
일제치하에 대활단을 조직, 국민 계몽운동에 앞장서던 남편 신기호. 기미독립 선언문을 청주 골방에서 등사하다 일본 헌병들에게 체포된 시아주버니 신영호. 추위와 기아에 허덕이는 피발령 동지들을 위해 부랴부랴 솜옷 만들고 떡살 담그고 고추장 볶던 송숙경 자신. 동포인 일제 염탐꾼에 들켜 만석의 살림을 송두리째 불태워버린 운명의 형극들을 ‘안채 하나뿐인 사연’에서 진솔하게 보여준다.
송숙경 할머니는 이억 만 리 만주땅에서 나라 잃은 울분을 삼켜야만 했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이 뒤엉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생과사의 전쟁터를 전전해온 그 애락의 세월을 차라리 봉사로 이어지는 생활, 운명에 승복하면서 살아온 젊음의 영광으로 회상하고 있다.
큰아들과 둘째 아들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내고 인생의 기둥이던 할아범마저 작년에 타계해 자포자기 할 수 없는 혼자가 돼버린 송숙경 할머니는 자신에게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고의 채찍질로 시문집 「햇살은 푸른빛 천지에 가득하여라」를 펴냈다 한다.
팔십인생 풍상의 마디마디를 조건 없는 행복의 열매로 받아들인 송숙경 할머니는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진실로 통하는 길목’에서 거치른 나날은 침묵에 묻히고/아픈 마음의 상처 힘겹게 아물어/…/이제 진실 앞에 마주서서/그 따스한 미소에 취해/나 역시 미소를 보내리니/용서받기 보다는/용서하는 마음임을 관조하고 있다.
문학을 좋아해 「도연초」 「사랑의 섬」 등 많은 문고판 번역집을 내고 일어 실력이 뛰어나 김소운씨와 휘문출판사에서 「엣센스 일한사전」도 펴낸 송숙경 할머니는 오늘도 성서 필사와 함께 푸른 빛 천지에 명경지수와 같은 사랑을 펴기 위해 고가 서재에 홀로 앉아 인생 만추의 혼이 깃든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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