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성현구애차 차여군자성무사’
(예부터 성현들은 차를 사랑했고 차는 군자의 성품과 같아 사악함이 없다).
예절을 갖추어 차를 대접하는 행동 ‘다례’. 대구대교구 초전본당 이창규 신부는 19C무렵 우리 차에 대한 서른한 수(首)의 시 ‘동다송(東茶頌)’을 저술한 초의 스님의 ‘다게송(茶偈頌)’을 인용, ‘다례’에 대한 첫 마디를 연다.
“약리적 차원과 정신적 차원의 의미로 분류를 하여 차를 마실 때 한국 차는 이 두 가지를 다 느낄 수 있어야 온전히 한 잔의 차를 마셨다고 할 수 있죠”.
대화와 휴식의 의미로 여겨지는 커피ㆍ홍차 등과 다르게 한국 차는 오묘한 철학을 느끼게 하고 종교적 신념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정신적 차원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서 다도, 다례가 시작됐다고 이 신부는 전한다.
종교적인 바탕을 짙게 깔고 있는 한국 차는 불교 유교 도교에서는 큰 의미를 차지하였고 종교적 열정과 같게 취급되어 수행(修行)의 의미가 컸다고.
이 신부가 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신학생 시절 본당 신부가 권해준 차를 마시면서 부터였다.
당시 ‘시레기 삶은 물을 마신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털어놓는 이 신부는 그러나 진솔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다담(茶談)상의 묘한 분위기, 함께 있던 다른 이들은 차가 맛있다고 한데 대한 오기(?)로 ‘정식으로 차를 배워보겠다’는 마음을 가졌다고 들려준다.
온갖 서적을 찾아보고 사찰 등에 가서 차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등 그때부터 이 신부는 한국 차의 청아하고 담백한 차 맛에 빠져들게 되었고 동기 신학생들에게는 차를 전하는 산파역할을 하기도 했단다.
“나름대로 일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 호젓하게 한 잔의 차를 마실 때, 오랫동안 잊고 있던 친구가 찾아와 함께 차를 마실 때 그때의 차 맛은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다”고 밝히는 이 신부는 건강에 이롭고 멋·흥취·풍요로움을 알게 하고 마음을 닦게 하는 차생활이야말로 신자들 특히 수도자들에게 권장할만한 좋은 취미라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목생활의 활력소로서 바쁘게 쫓기다가 한가한 시간에 동반자같이 다가오는 존재로 차를 알았다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 여겨진다는 이 신부. 차를 통해 친구가 되고 차를 알려준 후 함께 즐기게 됐을 때 진한 기쁨을 느꼈다고 얘기한다.
“‘물은 몸(體)이요 차는 신(神)’이라는 말처럼 좋은 차가 좋은 물을 만나 절묘하고 향그러운 맛을 내듯 몸과 정신이 아름답고 청정한 사람에게서는 신묘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차를 아름다운 사람과 비교 할 수 있죠”.
“차를 마시며 이러한 것을 느껴야 하는데 그러한 영역으로 가꾸어져 나가야 하는데 어렵다”고 토로하는 이 신부는 “차를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이 늘어나 여유와 삶의 풍요를 느끼게 되고 또한 가톨릭의 영성과 차문화가 결합된 가톨릭 다도 같은 것이 생겨났으면 한다”고 전했다.
[취미와 건강] 차례에서 군자성품 배운다 - 대구 초전본당 이창규 신부
신학생때 청아한 차맛 심취
종교와 접목 신심수행 적합
발행일1993-05-09 [제1854호,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