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사목자가 얼마동안 경찰관 생활을 하다가 사목생활로 들어가면 여러모로 유익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신체검사에 합격하고 구두시험을 치르는데 응급한 경우에 어떻게 빠르고 슬기롭게 대처하는가를 시험하기 위하여 많은 질문을 한 후 “분노한 무리들이 몰려오게 되면 그들을 어떻게 해산시켜 버리죠?”라고 하자 한참 생각하더니 “네, 간단합니다. 헌금바구니를 돌리면 다 도망갑니다”하더란다.
사제 서품을 받고 그런대로 돈에 초연한 신부로 살아오다가 신설본당 신부가 되고서는 하루아침에 돈을 밝히는 신부로 전락하고 말았다. 예비자 교리반을 개설하고 나서 성당의 입교동기를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응답한다. 그런데 가진 것이라고는 부채(負債)밖에 없는 신설본당에 와서는 신자들에게 마음의 평화는커녕 마음에 부담을 주는 신부가 되어 있었다.
예전에 지나칠 정도로 돈에 관해 말하는 사목자를 보면 눈살을 찌푸리곤 했는데 어느 날 밤에 자리에 누워 생각하니 내가 바로 그 장본인 신세가 되어있음을 발견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어떻게 낯선 신자들에게 배경을 설명하고 그 내용을 알릴 것인가? 무엇이 이들의 굳어진 마음을 열게 할 것인가? 돈이 떨어져 봐야 세상인심도 알고 돈 없으면 못난 놈 된다더니, 착한 사람은 술집에 가도 타락하지 않고 악한 사람은 교회에 가도 회개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방법은 정면 돌파밖에 없었다.
“우리의 문제는 불경기나 세태의 각박함이 아니다. 우리가 걱정해야할 것은 건립기금이나 미사장소가 아니다. 우리가 괴로워해야할 것은 관리비 체납이나 그로 인한 단전단수(斷電斷水)가 아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바로 우리 자신 안에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교만이요, 이기심이다. 우리 자신의 무관심이요, 무기력이다. 우리 자신의 불감증이요, 두려움인 것이다”하고 강론시간에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노천(露天)고해소에 앉아 입술을 깨물었다. ‘어서 빨리 돈에 초연한 신부로 원대복귀 하자’. 그때 눈앞을 아른거리는 말마디가 있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