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아내도 아니면서 누구의 엄마도 아니면서 사랑하는 일에 목숨을 건 여인아!”
수도원의 뜨락을 조심스레 거닐면서 그 노래를 치마폭에 받아 안아 옮겨놓았을 어느 시인 수녀님의 심정이 눈에 보이듯 선하다.
지난 성소주일에 수녀원을 찾아왔던 이들에게 수녀들의 삶을 들려준 몇 개의 노래 중에서도 유난히 이 노래마디들이 입속에 남아 흥얼흥얼 되새겨보게 되었다.
수녀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참으로 잘 노래한 글귀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수녀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러저러한 신학지식을 동원해서 설명을 해주면 ‘그런가보다’하던 사람들도 이 대목을 표현해 보노라면 ‘아, 그렇군요’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만났던 여러 번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연중 피정을 지도해주신 주교님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때때로 떠올려보게 된다.
외국 유학을 하시던 때에 한국인의 교통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어 얼른 현장으로 달려가셨고 목숨을 잃은 젊은 부부의 장례미사를 봉헌해주셨다. 그들의 장례식엔 불과 네 다섯 살의 어린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아빠 엄마를 잃은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한국인 수녀님 한 분은 그저 아이의 머리만을 쓰다듬으며 위로하고 계셨다 하신다.
그 모습은 죽은 자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어린아이에 대한 가슴 절이는 아픔과 함께 애잔한 서글픔을 느끼시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주교님은 “그 작고 불쌍한 아이를 가슴에 안아 위로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하시며 어머니다운 넉넉한 모습을 가져 달라고 당부하시기를 잊지 않으셨다. 나 자신에게 이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일에 목숨을 건 여인’이라고 분명히 이름을 붙여 두어야겠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일을 등한히 하는, 마치 사랑에 게으른 모습을 가질라치면 이 분명한 이름으로 내 모습을 바로잡아 서게 해야겠다. 그래야 ‘수녀’라는 나의 이름에 걸맞은 주인 노릇을 어는 정도라도 제대로 해나가게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