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수도생활이나 성직생활에로 부르심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부활 4주일에 맞는 성소주일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무릇 결혼성소를 받은 사람들이 그 삶의 큰 몫으로 주어져 있는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통해서 자신들의 인생의 가치를 누려간다면, 봉헌의 성소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처럼 계속적으로 봉헌생활에 응답하는 젊은이들과 더불어 봉헌의 삶에 깃들인 영원한 진리의 증거를 인생의 가치로 누려간다고 하겠다.
오늘의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인류 공동체에게, 인류 존재의 목적과 운명의 진실을 깨우쳐주고, 형언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증거의 삶을 요청하고 있다는 교회의 목소리 그 자체가 얼마나 간절한 기도인가를 지금의 자리에서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빛’과 ‘세상의 소금’이어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희망에 찬 사람들이 바로 우리 자신들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희망에 차있지 못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아름다움을 힘 있게 드러내지 못해 왔음을 바라봄으로써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성소주일에 보내신 교황님의 담화문은 매우 간절한 호소로 마음에 메아리친다.
“변질과 타락 속에서 고민하는 현대는 숭고한 정신적 승리의 빛을 우리시대에 보존하기 위하여 높고 거룩한 영신적 가치에 자신을 바치는 선의의 남녀들의 삶의 증거를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요청하고 있습니다.”
성소자들과 만나는 일을 하다보니 이런 메시지들을 듣게 되면 우선 자신의 신원에 대한 재조명을 하게 되고 신원에 맞갖은지의 모습을 찾아보노라면 만나는 성소자들에게 무슨 도움을 나눌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걱정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성소자들과 무관한 소임을 하던 때에는, 사실 성소자들과 무관한 소임이란 없는 것인데도, 성소를 불러 일으킬만한 어떤 노력에도 무딘 채로 지내왔다.
그런 중에 뒤늦게나마 자신의 성소적 삶의 가치정립과 함께 세속적인 봉헌생활자들에 대한 갈망을 기도로 삼게 된 것은 작년도 성소주일에 보내셨던 메시지 ‘세계는 영원한 가치를 증거할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는 주제를 통해서였다.
얼마나 소중히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며, 얼마나 간절히 들려주어야 할 말씀이며, 또 얼마나 힘차게 보여주어야 할 말씀인가!
“세계는 영원한 가치를 증거할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