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비행기라 느지막이 카이탁 국제공항으로 나갔다. 내가 탈 필리핀 항공카운터를 찾아 스스로 탑승수속까지 마치고 나니 구미리내 만만세다.
그러나 잠시 후 문제가 생겼다. 내가 탈 비행기의 탑승구가 정해져 있지 않아 꼼짝도 못하고 게시판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이상하게도 출발시간이 가까워져가는데 탑승구가 게시될 생각을 안 하는 것이었다. 싼 항공사라 그러나? 가슴이 콩당콩당,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어렵사리 첫 발을 내디딘 필리핀 여행길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도착한 마닐라공항에서도 배낭여행자는 없고 온통 내국인들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 혼자 숙소를 찾아가야 했다.
좀 비싸긴 했지만 가장 안전하다는 공항택시를 타고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말라테 팬션으로 향했다. 운전수가 거울 앞에 묵주를 걸어놓은 것을 보고 반가워 나도 가톨릭 신자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비교적 친절한 자세로 창밖으로 지나치는 시내 풍경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참 고마운 운전수였다.
다음날 아침이 마침 주일이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나는 피곤을 무릅쓰고 아침부터 서둘러 성당으로 향했다. 미사참례를 하고 나니 여행으로 피곤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듯 했다. 역시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았다.
12월 28일 아침 인트라무로스 성벽도시와 산티아고 요새를 가보았다. 그 중 유난히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성 아우구스띠노 성당이었다. 그동안 네 번의 대지진이 마닐라 지역을 휩쓸었다는데 다른 건 무너지고 난리가 났었지만 이 성당만은 이상하리만큼 상처하나 안 나고 멀쩡했다는 것이었다. 성전은 지키시기 위한 하느님의 힘은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내부도 멋있어서 저절로 엄숙한 자세가 나올 정도였다.
또한 2차대전 때의 격전지를 그대로 두었다고 해서 유명한 산티아고 요새도 돌아보았는데 그 안에는 리잘 기념관까지 있었다. 그런데 좀 서글펐던 것은 해설문에 일어와 중국어는 쓰여 있건만 한국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이었다. 작은 일이었지만 순간 얼마나 화가 나고 서운하던지…
우리나라 안에서는,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끼었다느니 하면서 자만 하지만 나와서는 우리를 그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인가? 이국땅에서 한글을 볼수 있는 그날은 언제일는지. 입맛이 씁쓸했다.
12월 31일 92년의 마지막 날이라고 필리핀 아이들의 화약축제가 시작되었다. 이곳 아이들은 1년 내내 돈이 생기는 대로 이 화약을 사 모았다가 그것을 이날 한꺼번에 터뜨린다고 했다. 쉴 새 없이 터지는 화약소리에 나도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 누워 지난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가만히 뒤돌아보았다. 그러나 만족감 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이 밀려들고 있었다.
1월1일 새해가 돌아왔다. 비록 떡국은 못 먹었지만 대신 숙소 직원들의 새해 인사를 받으며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푸에르토 갈레라라고 하는 휴양지로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마닐라에서 버스로 2시간30여 분, 배로 다시 1시간40여 분 만에 드디어 푸에르토 갈레라 항구에 도착했다.
화이트 비치에서 마땅한 숙소를 찾은 후, 마음도 풀 겸 옷을 입은 채, 마음도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바다 밑이 경사가 심해 좀 위험하긴 했지만 물이 참 깨끗하고 깊숙이 들어가면 작은 물고기들까지 보여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물에서 나와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바다와 마주한 방갈로 탁상에 앉았다. 저 멀리 붉게 물들며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자니 집 생각이 절로 났다. 방갈로의 불빛이 모두 꺼진 가운데 철썩철썩 외로이 들리는 파도소리가 더욱 더 집 생각을 나게 했다. 부모님께 세배도 드리지 못했는데 오늘은 엽서라도 띄워야겠다.
필리핀, 단 10일간 다녀왔을 뿐인데 거리 곳곳에는 많은 거지들이 구걸을 하며 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필리핀 불법취업자들이 많은걸 보며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무작정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유들이 많이 있었다.
한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수억씩 끌어간다는 맥도날드 같은 외국 도입형 패스트 푸드점이 그곳에서는 파리를 날리는 대신 필리핀이 개발해낸 페스트점 ‘졸리비’는 언제나 성시를 이룬다는 사실이었다. 이왕 먹는 것, 조금은 맛이 없어도 내 나라에서 만든 걸 사먹겠다는 그들의 국민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하버드 출신자들이 우리나라보다 많은 만큼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필리핀, 그럼에도 왜 그리 가난한 건지. 평등을 사랑하는 하느님을 믿는 국민들이지만 부자들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재산도 가지고 있다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필리핀의 마지막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계속>
[구미리내의 인도이야기/유구한 대지 인디아를 가다] 3 마닐라서 화이트 비치까지
대지진도 이겨낸 성 아우구스띠노 성당
국산품 애용 습관 몸에 밴 국민성에 감탄
발행일1993-04-25 [제1852호, 12면]